루스벨트,"정책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다"
키신저의 경고...

[인용]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외교정책의 선택은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라 생각했을까? 정책결정자가 정책을 선택할때, 그의 마음 속에서 과거와 미래는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다음 사례를 보면, 과거를 보면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는 대통령의 단순한 역사관이 현재의 정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와의 대화를 통한 미래의 전망이 현재의 정책의 선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어니스트 메이에 따르면, 제2차세계대전 말에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유럽에서 스탈린에게 유화적이었고, 양보하는 태도로 나온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제1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 가까운 장래에도 반복될 것이란 인식에 루스벨트가 도달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고립주의와 평화주의 경향이 종전과 더불어 부활 것이란 예상이었다. 이렇게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미래도 진행될 것이란 인식의 결과가 스탈린에 대한 루스벨트의 유화적 정책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루스벨트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미국 여론이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경향과 유사할 것이라 전망했다. 그는 의회에서의 고립주의와 평화주의의 힘을 알고 있었고, 1930년대 미국 여론에서 고립주의와 평화주의 성향이 강했음도 알았다. 나치의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미국의회는 더 강한 중립법을 통과시켰을 뿐이었다. 심지어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당한 후에도, 루스벨트는 영국을 돕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1941년말까지 미국 하원은 성인 남성에 대한 징병에 딴지를 걸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루스벨트는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단 평화가 찾아오면, 미국내의 고립주의,평화주의 세력이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라 예상했다.

루스벨트는 1945년 2월에서 처칠과 스탈린을 얄타에서 만났을때 이 전망을 분명히 이야기했다. 미국이 종전 이후 미군의 유럽주둔을 2년 이상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가 왜 이런 틀린 전망을 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바로 루스벨트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이램 존슨 hiram johnson, 그는 1919년에도 윌슨의 전후평화 구상에 딴지를 걸었던 자인데 여전히 상원의 외교관계 위원회의 고참 의원이었다. 그리고 중립법을 주창한 상원의원 제럴드 나이도 건재했다. 특히 무기대여법에 끝까지 반대한 오하이오 주의 로버트 태프트 의원이 1944년 대선에서 공화당 예비 후보군이었다. 

뿐만아니라, 워싱턴 타임즈 해럴드, 뉴욕 데일리 뉴스, 시카고 트리뷴 같은 언론도 존슨,나이,태프트와 한 목소리를 냈고, 독자가 1000만명에 달했다. 

이러한 국내 상황을 고려한 루스벨트는 미국 의회가 유럽에서의 철군을 결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루스벨트 스스로도 조기 철군을 희망했다. 미국 합참의장과의 회동에서, 루스벨트는 "우리가 유럽에 세력권을 만들어 발목을 잡히면 안됩니다"라고 강조한 적이 있었다. 

따라서, 루스벨트에게 가장 그럴듯하게 보였던 미래는 유럽에서의 미군의 조기 철군이었다. 이렇게 유럽에 대한 미국의 전후 공약은, 미래는 얼마전의 과거에 있었던 것처럼 똑같이 진행될 것이란 예상에 기초했다.


Ernest R. May, "Lessons" of the Past: The Use and Misuse of History in American Foreign Polic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73).pp.14-15.   
by 파리13구 | 2016/02/06 03:55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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