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과 키신저의 운명적 만남-1968년 11월
키신저의 경고...


1968년 11월 25일, 키신저는 닉슨 대통령직 인수위 본부가 있는 피에르 호텔에서 당선인 닉슨을 만났다. 두 사람간의 공식적인 첫만남이었다. 바로 이 날 키신저가 자신의 인생을 바꾸게 된다.

당시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었던 리처드 닉슨은 키신저와의 회동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우리는 외교정책이 어떻게 수행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동의했고, 그것은 믿음이 갈 정도로 강해야만 했고, 성공할 정도로 믿을만 해야 했다. 

나는 파리 회담을 통한 베트남전쟁 해결 전망에 대해서 희망적이지 않았고, 우리가 베트남에 대한 전체 외교적,군사적 정책을 다시 구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키신저도 동의했지만, 그는 나보다 협상에 대해 덜 비관적이었다. 

나는 존슨이 걸려든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 결심했고, 나의 외교정책의 시간과 에너지를 베트남에 소진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베트남은 단기적인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장기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실패하는 것이 미국와 안보와 생존을 위협한다고 생각했고, 이런 점에서 나는 나토 동맹의 활력을 부활해야 하고, 중동,소련 그리고 일본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에게, 내가 이 문제를 가능성과 필연성이란 관점에서 처음으로 제기한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을 읽어보라고 요청했다. 키신저는 내가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다.

나는 헨리 키신저에 대해 강한 직감을 느꼈고, 나는 그 자리에서 내가 키신저를 나의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기용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Niall Ferguson, Kissinger. Volume 1, The idealist, New York : Penguin Books, 2015.p.851]


한편, 키신저는 그의 회고록에 그 날의 회동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날 회동에서 닉슨의 대화 주제는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닉슨은 국무부에 대한 신뢰가 거의 없었다. 국무부 사람들이 그에게 전혀 충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국무부는 부통령 시절에 그를 멸시했고, 그가 야인이던 시절에 그를 무시했다. 따라서 그는 외교정책을 백악관이 주도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존슨 행정부가 군부를 무시했다고 생각했고, 군의 정책결정 절차는 대통령에게 아무런 실질적 선택권도 제공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는 또한 정책 형성과정에서 CIA가 배제되어야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느꼈다. CIA에는 아이비리그 출신 자유주의자들로 가득하고, 그들의 무대 뒤에서의 정보분석 목표는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밀고나가는 것일 뿐이란 인식을 닉슨이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항상 닉슨을 정치적으로 반대해 왔다.

....

닉슨은 자신의 외교정책에 대한 몇가지 입장을 밝혔다. 나는 내가 이전에 그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와는 대조되는 그의 통찰력과 지식에 놀랐다. 그는 그의 외교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지에 관한 내 견해를 물었다. 

나는 가장 시급한 문제는 우리 외교정책이 과대만족과 공황상태 사이의 맹렬한 역사적 동요로부터 그리고 외교적 결정이 정책결정자의 개성에 주로 의존한다는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임을 지적했다. 정책은 국익과 관련된 몇가지 원칙에 기반해야 하고, 특정한 정권을 초월해야 하고, 따라서 대통령이 바뀌어도 유지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출처-

Henry A. Kissinger, White House Years, 11-12.
by 파리13구 | 2016/02/04 15:19 | Le monde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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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레이오트 at 2016/02/04 15:29
1. 이래저래 좋지않은 소리 듣는 닉슨이지만 그래도 냉전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데탕트를 열 정도로 유능해서 그런지 키신저와 같은 인재를 보는 눈이 있었군요.

2. 그 시기 미국 군부와 CIA가 백악관을 무시하면서 엄청 설쳐댄건 사실이죠.

3. 그건 그렇고 닉슨은 1960년 대통령이 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민주주의 선거의 필수요소인 TV 토론에서 JFK에 비해 덜 매력적인데다가 위장병이라는 악재가 겹치는 바람에 제대로 당했지요. 이때부터 각종 선거에서 후보자들이 정책보다는 이미지에 더 많이 투자하게 되었다고 하며 그 롤모델은 당연히 JFK이지요.
Commented by 파리13구 at 2016/02/04 15:30
닉슨은 미국 대통령 역사에서 제일 저평가된 인물이라 봅니다. 워터게이트...ㅠㅠ
Commented by 레이오트 at 2016/02/04 15:43
1. 워터게이트는 JFK 암살사건 수준은 아니지만 아직도 음모론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올라오는 주제이지요.

2.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으킨 대통령재선위원회 정보 수집 담당자 G. 고든 리디가 리처드 닉슨에게 자신의 공작계획을 설득할 때 쓴 방법은 지금도 미국에서 중요한 심리학적 주요 사례입니다. 참고로 이 설득방법은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요.

3. 이 워터게이트 사건은 내부고발자의 역할과 이들에 대한 보호의 중요성을 가장 잘 알려주는 사건이기도 하지요.
Commented by 키키 at 2016/02/04 22:13
전 아직도 닉슨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알면 알수록 '이상한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당시 녹음된 닉슨 대통령 집무실 내용들은 정말 가관입니다.

저에게 닉슨은, 71년 금본위제를 폐지하여 브레튼우즈 체제를 깬 것이 상당히 크게 다가오는 인물입니다. 알고 그런건지.. 모르고 그런건지..
Commented by 파리13구 at 2016/02/05 00:35
닉슨, 지못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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