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가 키신저 사상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키신저의 경고...


1938년 8월, 키신저 가족은 수정의 밤 직전에 독일을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만약 키신저 가족이 적기에 독일을 탈출하지 못했다면, 그들은 키신저의 독일 잔류 친척들이 겪었을 운명을 맞이했을 것이 분명하다.

퍼거슨에 따르면, 키신저의 친척 중 최소 23명이 홀로코스트로 인해 사망했다.

몇몇 키신저 연구가들이 키신저 사상 형성에서의 홀로코스트의 위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신저 본인은 항상 홀로코스트가 그의 발달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키신저는 1971년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나치 독일의 퓌르트 Fürth에서 보낸 유년 시절은 어떤 지속적인 영향도 주지 못했다... 그것은 내 유년기의 일부였을뿐,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의식적으로 불행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어떤 일이 진행되었는지 매우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어린이들에게 그 모든 사건들은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요즘 모든 것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유행이지만, 내 생각에 따르면, 내 유년 시절의 정치적 박해는 내 인생을 사로잡지 못했다."

[Mazlish , Kissinger: The European Mind in American Policy, 18-19에서 재인용]

2007년 니얼 퍼거슨과의 인터뷰에서 키신저는 "내 첫 정치적 경험은 박해받는 유대인 소수민족의 일원으로 겪은 것이다."라고 증언했다. 그럼에도 그의 인생에서 홀로코스트가 결정적이었음은 역시 부인했다 :

"그리고, 내 가족 중 많은 친척들 그리고 내가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 중 70%가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 따라서 이는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나치 독일에서 살았다는 것을 잊을 수도 없고,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무관심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나의 유대인 뿌리라는 의심스러운 관점에서 모든 것을 분석하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Niall Ferguson, Kissinger. Volume 1, The idealist, New York : Penguin Books, 2015.pp.80-81]

뿐만아니다. 1938년에 독일을 떠나기 전까지 키신저는 독실한 유대교 신앙인이었다. 하지만, 1938년부터 1945년 사이, 키신저는 유대교 신앙을 버렸다. 물론 그는 종족상으로 여전히 유대인이었지만, 종교를 믿지 않게 되었다.
by 파리13구 | 2016/01/26 17:13 | Le monde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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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계란소년 at 2016/01/26 18:07
전쟁 중 종교를 버렸다라...전쟁 끝나고 다시 종교를 믿은 건가요?
Commented by 파리13구 at 2016/01/26 18:30
전쟁후 계속 무신론자 입니다
Commented by 계란소년 at 2016/01/26 22:00
아 그 기간동안이 아니라 그 사이 언젠가쯤이란 거군요.
Commented by 파리13구 at 2016/01/26 22:01
네...
Commented by 이파네마 at 2016/01/27 08:15
하긴 본인의 경험에 대한 판단은 본인이나 타인이 같을 수는 없지요. '옳다'는 것 역시 그들 각자의 나름의 해석에 맞추는거고. 그래도 키신저 본인이 아니라고 하는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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