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 적과 화해하는 두가지 방법은?
키신저의 경고...


키신저는 그의 박사논문, <회복된 세계>에서 안정된 국제질서의 역설을 하나 지적했다. 즉 안정된 국제질서란, 그 소속 국가들, 특히 강대국들이 정통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체제이지만, 그 체제에 대해서 소속국가들이 다소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키신저에 따르면, 바로 이같은 일반적 불만이 국제체제 안정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만약 한 세력이 완벽히 만족하게 된다면, 다시 말해서 절대적 안전을 추구했다고 느낀다면,  다른 세력은 절대적 불만을 느끼기 마련이고, 이것이 국제체제에 혁명적 상황을 가져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결국, 한 국제체제의 소속 국가들이 체제에 대해서 약간을 불만을 가지고, 절대적 안전이 아니라 상대적 안전을 느끼게 될때, 그 국제체제는 안정된 체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에 소개할 내용은 비록 빈회의를 다른 것이지만, 키신저의 박사논문 중 일부를 인용한 것으로, 전후 평화체제 구축에서 절대안보의 추구가 어떻게 영구적인 혁명적 상황을 초래하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가령, 베르사유 체제에서 프랑스가 독일에 대한 징벌적 강화를 추구한 것이 어떻게 이 국제체제를 항구적인 불안상태로 만들었는지를 알수있게 해준다.

캐슬레이가 강화조약에 대한 논의를 준비하는 동안, 온건한 방식에 반대하는 온갖 압력이 작용했다. 적이 무력하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인 반면, 적이 화해할 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추측에 불과했다. 획득한 영토는 확실한 소유가 보장되지만, 자제력을 발휘해 적을 국제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신뢰의 표현 이었다. “절대적 안보를 주장하는 자들이 항상 대중의 지지를 얻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현재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만족하나, 무릇 경세 statesmanship 란 미래를 다루어야 하는 법이다.

절대적 안보에 대한 논쟁은 제아무리 합리적”이라도 국제 공동체 내부에 변혁적 상황을 초래한다. 전쟁의 단일한 명분만을 고집함으로써,그들은 물리적, 심리적인 불균형 상태를 조장한다. 강화가 징벌적일수록 집단안보체제에 대한 요구는 더욱 집요해지기 마련인데, 그것은 과거의 적이 계기하는 위협으로 정당화되는 체제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는 경직성의 고백이고, 평화가 압도적인 힘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고백이다. 항구적으로 불만을 느끼는 국가가 포함된 질서에서는 조화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결국 해결책은 변혁적 국가와 가장 기꺼이 타협할 의사가 있는 무자비한  구성원의 뜻에 좌우된다. 따라서 굴복한 국가의 표면적인 나약함은 신뢰할 수 없으며, 그 국가를 영구적으로 약화시키려는 노력이 도리어 그 국가의 상대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승전국들은 스스로 강화의 정통성 원칙을 위반하거나, 과거의 적으로부터 자발적인 수락을 얻어내지 못함으로써 심리적인 왜곡현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현상유지 국가는 더이상 “정통성”에 호소함으로써 그들의 입장을 방어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은 징벌적 강화에 희생된 국가를 상대로 힘에 기초한 주장을 펴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안정을 가장 필요로 하는 국가가 본질적으로 변혁적인 정책의 옹호자로 변한다. 징벌적 강화가 패전국보다 오히려 승전국의 사기를 더 저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절대적 안보의 추구는 영구적인 변혁을 초래한다. 

[키신저, 헨리, 『 (헨리 키신저의) 회복된 세계 : 메테르니히, 캐슬레이와 1812~1822년간 평화의 문제 = A World restored : Metternich, Castlereagh and the problems of peace, 1812-1822  』, 박용민(역),서울 : 북앤피플, 2014,pp.352-353. ]

키신저에 따르면, 전쟁 이후의 평화체제 구축에서 두가지의 강화가 가능하다. 회고적인 강화와 미래지향적 강화가 바로 그것이다. 키신저가 명시적으로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우드로 윌슨이 베르사유 체제에서 구현한 것이 회고적인 강화였다면, 영국의 캐슬레이와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가 빈체제에서 구현한 것이 바로 미래지향적 강화였다고 할 수 있다.   

첫째, 회고적 강화 혹은 징벌적 강화란 무엇인가? 

적의 패배는 보복의 기회이다. 승전국측의 적에 대한 무제한적 요구는 당연하다. 적이 다시는 전쟁을 할 수 없게 적을 파멸시킨다. 절대적 안전을 추구한다.  
회고적 강화는 정통성에 기반을 둔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회고적 강화에는 두 개의 정통성이 존재하는데, 승자의 그것과 패자의 그것이다. 그 두 개의 정통성 사이의 관계를 규제하는 것은 오로지 무력 혹은 무력 사용의 위협 뿐이다. 전쟁의 싹을 없앤다는 포부를 가지지만, 이것이 도리어 변혁적인 상황을 초래하고 만다. 
양차 대전 사이의 유럽 상황이 회고적 강화의 예이다. 

둘째, 미래지향적 강화이다.

적이 다시 전쟁을 원하지 않도록 적을 다룬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빈회의에서 캐슬레이와 메테르니히 같은 정치인들은 회고적 강화의 유혹에 저항했다. 그들은 보복이 아닌 균형을, 징벌이 아닌 정통성을 추구했다. 프랑스를 해체하지는 주장은 진지하게 제기되지도 못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파리조약은 정치가의 과업은 처벌이 아니라 통합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수립된 균형의 강화였다. 어느 한 국가에만 제약을 가하고 다른 모든 국가들 사이의 불균형을 조장하기 마련인 절대적 안보 신화는 무시되었다. 이렇게 나폴레옹에 대항하는 전쟁은 증오의 승전가가 아니라 화해의 정신 속에서 국제질서의 안전성은 그것을 지키려는 구성원들의 각오가 얼마나 강한지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가운데 막을 내렸다. 그것은 성급한 세대의 거대한 이상을 반영하는 평화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동기는 추상적 이상의 실현이 아닌 안전에 있었다. 그러나 사반세기에 걸친 동란 끝에 얻은 안전은 하찮은 성취가 아니었다. 


결국 키신저에 따르면, 평화정착을 위한 협상의 원칙은 징벌,처벌,보복이 아니라 정통성이며,
적이 다시는 전쟁을 하지 못하도록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적이 다시 전쟁을 원하지 않게 만들며,
승전국 측의 이상 보다는 전후세계의 미래 안전이라는 현실적 고려가 우선시 되야 한다는 것이다. 

[키신저, 회복된 세계, 273-283] 

by 파리13구 | 2016/01/23 15:14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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