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대량보복 전략이 미국의 마지노선인 이유는?"
키신저의 경고...



[키신저]
[핵무기][핵전쟁]
[핵전략][대량보복 전략]
[프랑스][마지노선]
[군사전략][외교정책]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책(정치)의 연속"이라 정의했지만, 실제 역사에서 전쟁과 정책이 모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키신저가 역사적 유추를 통해서 미국의 핵전략인 대량보복과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비교했을 때, 양자의 공동의 문제는 군사전략과 외교정책의 모순에 있었다. 가령 외교는 공세를 주장하지만, 군사전략은 방어에 경도되어 있거나, 반대로 군사전략은 강한 공격성을 표현하지만, 외교정책은 수세적 방어를 주장하는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헨리 키신저는 핵무기와 외교정책 Nuclear Weapons and Foreign Policy 을 1957년에 출간했고, 이를 통해 그는 전국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책에서 키신저는 아이젠하워 정부의 핵정책, 즉 대량보복 정책을 비판했다. 키신저는 대량보복 전략은 과거 프랑스의 마지노선과 유사한 문제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대량보복 전략은 무엇이었는가? 로렌스 프리드먼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

<<아이젠하워 시대의 핵전략은 대량보복 전략은 미국 국무부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가 1954년 1월에 했던 한 연설에서 비롯되었는데, 이 연설에서 덜레스는 미래에 미국은 어떤 도발이든 간에 ‘우리가 선택한 장소에서 우리가 선택한 수단으로 응징하겠다고 천명했던 것이다. 이 발언은 소련이나 중국이 세계 어디에서든 간에 설령 재래식 무기로 공격을 하더라도 여기에 대응해서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위협으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대량 보복 전략은 핵 공격 위협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비판받았다. 게다가 당시 소련의 핵전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으므로 미국이 했던 이런 위협의 신빙성도 점점 떨어졌다. 만일 세계의 어떤 지역에서 국지전이 일어나고 여기에 대응해서 미국이 재래식 무기를 동원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 선택은 ‘자살이나, 아니면 항복이나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는 뜻이었다. 위협을 할 수 있는 상대에게 위협을 한다는 이 설정은 지적 창의성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 이 시기는 전략 연구의 '황금기’로 묘사된다.>> 

[로렌스 프리드먼, 전략의 역사 1,비지니스북스,2014.pp.336-337.]

어떠한 이유 때문에 키신저는 아이젠하워의 핵전략을 비판했을까? 키신저에 따르면, 대량보복 전략은 미국의 마지노선이 되었다는 것이다. 

<<수적 우월이나 월등한 파괴력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려는 것은 마지노선과 같은 정신상태와 유사해 보인다.>>

[Kissinger, Nuclear Weapons and Foreign Policy.(New York: Harper and Brothers. 1957),p.60]

1950년대에 키신저는 대량보복 전략이 정책의 마비를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50년대 미국의 상황이 1930년대 프랑스의 전략 상황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1936년, 프랑스군 총참모부는 전면전에 대비했고, 이 경우 방어에 나선다는 것 이외의 독트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총참모부는 프랑스-독일 국경에 대한 직접 공격 이외의 다른 형태의 공격에 대한 비상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각각의 작은 변화로 전략적 균형이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 작은 변화란 그 자체로는 전면전의 가치가 없는 것을 의미했다. 그 결과, 히틀러가 라인란트를 점령했을때, 프랑스 지도부는 어쩔 줄 몰랐다. 프랑스는 총동원령의 결과에 전율했지만, 자신의 전략 독트린은 어떤 다른 군사적 조치를 제안하지 못했다... 이러한 프랑스의 전략의 경직성의 처벌은 군사적 재앙이었다.>> [Kissinger, Nuclear Weapons and Foreign Policy.19-20]

키신저는 대량보복 전략의 경직성이 유사한 미국정책의 마비를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키신저는 핵무기에 대한 미국의 의존, 특히 세계의 변경 "grey areas"에서의 그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믿었다. 소련의 핵무기 보유가 증가하고, 발사 체계를 발전시키는 상황에서 핵전쟁은 양날의 칼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소련의 적대를 막는데도 같은 이유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게 될 것이었다. 더 나아가, 중국-소련 전략의 심리적 목표는 세계의 변경 지역에서 전면전을 감행하기에는 미약한 도발을 자행하는 것이 될 것이었다. 이러한 미약한 도발에 대해서는 미국의 대량보복 전략은 그 대안이 미흡했다. 이러한 미국 전략의 교리적 경직성이 중국-소련 진영이 야금야금 세계의 균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키신저는 또한 미국의 군사전략이 외교적 동맹 정책과 모순된다고 주장했다. 가령, 미국의 전략은 태국에 대한 공격이란 상황에 직면해서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은 태국을 지역적으로 방어해야 하는가 아니면, 중-소 진영에 대한 전면전에 나서야 할까? 키신저에 따르면, 대량보복 전략은 미국의 동맹국의 힘도 잠식시키는 것이었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전면적 핵전쟁에서 아무런 군사적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고, 이런 핵전쟁의 공포 앞에서 전율하게 될때, 그들의 선택이 항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번더 키신저는 30년대 프랑스 전략의 오류를 상기시켰다.

<<그것이 시험에 직면하게 되었을때, 이렇게 전간기의 프랑스  동맹체계가 붕괴했다. 왜냐하면, 동쟁의 정치적 목적과 군사 전략이 모순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동맹체제의 목적은 중부 동부 유럽의 약소국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군사적으로 볼때 동맹은 프랑스 측의 공격전략을 암시하는 것이었고, 양면전만이 독일의 중동부 유럽에 대한 군사적 압력을 완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지노선의 건설로, 프랑스와 그 동맹국의 군사 협력의 조건이 사라지게 되었다. 
독일이 도발한 각종 위기에서, 프랑스는 외교정책과 군사전략의 모순 사이에서 방황했고, 그 동맹국들은 자살적 저항과 항복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았다.>> [Kissinger, Nuclear Weapons and Foreign Policy.p.238]

키신저는 미국의 대량보복 전략과 외교적 동맹정책의 모순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냉전에서의 미국의 지위도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핵무기 사용의 결과에 대해 전율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사용을 주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미국의 마비는 1954년 인도차이나에서 명백했다. 대량보복에 대한 미국의 의존이 프랑스의 디엔비엔푸의 패배를 막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키신저는 1956년의 수에즈 위기에서도 핵무기가 무용했다고 보았다. 대량보복 전략은 헝가리 같은 소련 위성국 봉기에 미국이 대처했을 때도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이렇게 미국의 대량보복 전략과 프랑스의 마지노선의 역사적 유추를 통해서 키신저는 미국의 전면전을 유발하지 않을 정도의 국지적 도발에 대한 대응책의 부재에 대해 개탄했다. 이러한 소규모의 국지적 도발을 통해, 공산진영이 조금씩 끊임없이 세력균형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by 파리13구 | 2016/01/14 15:06 | Le monde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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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레이오트 at 2016/01/14 15:13
대외 정책 선택지를 줄인다는 점에서 대량보복전략과 마지노선은 서로 닮았다는 뜻이군요.
Commented by 파리13구 at 2016/01/14 15:25
전쟁과 외교가 병진할 수 있는 전략의 마련이 키신저의 고민이었습니다.

특히 대량보복과 마지노는 소규모 국지도발에 대한 대안이 부재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적은 소규모 국지도발로 야금야금 자신에게 유리한 정세를 만들려고 했구요...
Commented by 레이오트 at 2016/01/14 15:38
그 후 차라리 여러개의 프론트로 위장해서 대규모의 사설군대를 이용하는 방안이 더 나을 뻔했을 경우도 있었죠.
Commented by Mavs at 2016/01/14 15:21
한국전쟁에서 핵전력의 한계가 밝혀졌는데도 계속 핵에 의존하고 있었군요. 역시 미국은 한국을 특수한 상황으로 인식했나 봅니다.
Commented by 파리13구 at 2016/01/14 15:26
대량보복 전략이 제기된 것이 1954년 한국전쟁 직후입니다...
Commented at 2016/01/14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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