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사가 핵무기 시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키신저의 경고...

[키신저]
[핵무기]
[빈회의]
[역사적 유추]

1950년대초 키신저는 하버드 대학 행정학과 대학원의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당시 동료 학생들의 주요 관심사는 다음과 같았다 : 핵무기가 국제관계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박사과정 학생들이 논문주제로 전후 시대를 삼았다. 같은 시기에 동료학생이었던 존 스토싱어 John Stoessinger 의 증언에 따르면, "핵무기 시대의 자식으로 우리는 스스로 이 새로운 도전에 몰두해야만 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는 자신들 가운데 괴짜가 하나 있었다고 했다. 바로 키신저였다. 

키신저는 동료학생들에게 그의 어마어마한 졸업논문으로 최우수 성적으로 학부를 졸업했고, 동료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와이드너 도서관 Widener Library 에서 책무더기에 파묻혀서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날, 키신저는 스토싱어를 포함한 다른 동료학생들과 점심을 같이 했다. 곧 그는 자신의 논문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 어떻게 2명의 19세기 유럽 정치인-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와 영국의 캐슬레이가 나폴레옹의 패배 이후 유럽의 평화로운 균형을 만들었는가.

식탁에서 어떤 학생이 물었다. 원자폭탄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없는거야? 다른 학생은 비꼬는 투로, 사학과로 전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키신저가 냉정하게 논박했다. 히로시마가 새로운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인간이 아직 안정적인 세력균형 stable balance of power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역사적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만을 보여 줄 뿐이다. 따라서 빈회의 Congress of Vienna 를 연구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이 회의는 근대의 얼마안되는 성공적인 평화회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스토싱어에 따르면,"그는 마치 동료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홀로 독백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키신저에게는 무언가 엄숙하고 이질적인 면이 있었다. 그리고 또한 강한 야망을 느낄 수 있었다.

[출처- Walter Issacson, Kissinger: A Biography (New York: Random House, 1989),pp.74-75] 
by 파리13구 | 2016/01/08 02:38 | Le monde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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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개성공단 폐쇄 at 2016/01/08 08:25
김조의 핵개발은 주한미군의 강력한 힘에 대해 균형을 맞추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군철수 외에는 핵포기를 끌어낼 방법이 없죠.
Commented by shaind at 2016/01/08 10:56
핵포기 외에는 미군철수를 끌어낼 방법이 없죠.
Commented by 개성공단 폐쇄 at 2016/01/08 12:22
그래서 이것이 필요충분조건이 됩니다.
핵포기와 미군철수의 맞교환!
Commented by 솔까역사 at 2016/01/08 13:31
더러운 미군철수충 마구니는 듣거라. 진짜 솔까역사는 짐이니라 이 가짜솔까역사야!
Commented by 솔까역사 at 2016/01/08 13:34
천조국 군대는 영원히 이 땅에 주둔할 것이니 더러운 마구니의 주장을 멈추거라
Commented by 누군가의친구 at 2016/01/08 16:38
키배에서 털리는 분이 아직도 털린 논리 들먹거리는거 보면 참 웃기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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