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든 존슨이 베트남 확대 개입을 결정한 이유는? Le monde

키신저, 역사란 무엇인가?

린든 존슨의 베트남 확대 개입과 역사적 유추

린든 존슨이 베트남 확대 개입을 결정하는데 역사적 유추는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히틀러, 유화정책, 중국 공산화 같은 역사적 경험이 존슨의 정책 결정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정책결정자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인지적 도구로 유추가 사용된다는 것과, 이때 유추가 이끌어지는 원천이 어떤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바로 역사적 유추의 핵심 개념이다.

그런데 정책결정자가 이용하는 역사적 유추는 나쁜 결과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린든 존슨의 베트남 확대 개입 결정이라는 것이 김원섭의 주장이다.

김원섭에 따르면, 존슨은 베트남 문제를 과거 히틀러에 대한 챔벌레인(체임벌린)의 유화정책과 트루먼 행정부가 중국의 공산화(loss of China)를 막지 못한 것을 연관시키고 있었다고 한다.

존슨은 다음과 같이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베트남에서 철수하여 호치민이 사이공으로 진격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이는 2차 세계대전에 챔벌레인이 했던 것과 같은 것이라고 역사가 나에게 말 해준다는 점을 알고 있다. (...) 나는 트루먼과 애치슨이 중국이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간 이후 그들의 영향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중국의 상실(loss of China)이 매카시즘의 유행에 큰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이런 모든 문제들을 알고 있으며 만약 우리가 베트남을 잃는다면 중국의 상실과 비교할 수 없는 겁쟁이로 비칠 것이다." 

참고-

김원섭, 외교정책결정과정에 있어서 역사적 유추에 관한 연구 : 미국의 베트남전쟁 확대 개입을 중심으로 , 석사 학위논문, 고려대학교 대학원, 2009.p.33.

=> 베트남 확대 개입 결정 당시에 린든 존슨을 보좌하던 참모들은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표현처럼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그런 최고의 인재들이 베트남전 확대 개입이라는 최악의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 하나의 역설이다. 이는 정책결정에서의 역사적 유추의 힘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역사적 유추가 오용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보여준다.



덧글

  • 레이오트 2015/12/22 16:37 # 답글

    거기다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 절대 다수가 그 당시에는 정치행정계에서 현역이자 전성기였단 점도 작용하지 않았나 싶네요.
  • 파리13구 2015/12/22 17:02 #

    네, 하나의 세대적 경험이었습니다...
  • 까마귀옹 2015/12/22 16:46 # 답글

    호치민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을 히틀러와 동일시했다는 오류를 범했군요.
  • 파리13구 2015/12/22 17:02 #

    그렇습니다...
  • 관제역사vs솔까역사 2015/12/22 17:21 # 답글

    한국전 개입에도 적용할 수 있을 듯.
  • ㅁㄴㅇㄹ 2015/12/22 17:32 # 삭제

    아, 네. 미국의 한국전 참전은 불법이라는 분 답네요.
  • ㅁㄴㅇㄹ 2015/12/22 17:39 # 삭제

    트루먼이 저 논리로 참전 결정한건 사실인데 그래서 대한민국이 살아남았다고 하면 북한이 통일하지 못해서 원통하다고 하실분이니까 빼애액 하셔야죠.
  • ㅁㄴㅇㄹ 2015/12/22 17:42 # 삭제

    대한민국은 전통성이 없어서 대구인민봉기, 여순인민봉기ㅗ 격상 하지만 북한은 정통성 있어서 함흥 반동 폭동, 신의주 반동 폭동이라고 하셔야죠! 깔깔깔. 소련군과 김일성이 총칼로 죽인 학생들과 인민들은 반동이니 별것도 아니겠죠. 깔깔깔.
  • 관제역사vs솔까역사 2015/12/23 09:05 #

    독일은 대외 팽창이었고 중국, 한국, 월남은 내전이었다는 차이점도 있죠. 이슬람 세계에 개입했다 발을 못 빼고 허우적대는 것은 월남전의 교훈을 제대로 얻지 못한 결과입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5/12/22 22:46 # 답글

    적절한 예시로 저 위의 솔까역사처럼 역사를 자기가 보고 싶은데로 보는 경향까지 겹치면 역사를 통한 유추라는건 독으로 작용하죠. 역사를 통한 유추라는 것만 매달려서는 정확한 판단이 어렵기 때문에 정책 결정자는 다른 수단도 고려를 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 shaind 2015/12/23 00:33 # 답글

    베트남 개입의 동기가 역사적 유추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 만큼이나, 베트남 개입의 양태 역시 역사적 유추의 문제점을 보여주죠.

    사실 한국전은 많은 손해를 봤어도 본전은 건진 것인데, 베트남은 한국전의 경험을 잘못 해석한 토대로 어설프게 개입해서 본전까지 다 날린 사례랄까...
  • 산마로 2015/12/23 10:57 # 삭제

    그렇지 않죠. 한국전의 교훈을 제대로 못살려서 베트남전에서 저렇게 당한 겁니다. 전면적 개입 없이 제한적 개입만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한국전의 교훈인데 베트남에서는 롤백이 금지되었죠.
  • shaind 2015/12/23 14:51 #

    한국전의 실제적인 교훈이 무엇이건 간에, 미국이 당시 얻은 교훈은 각오도 없이 어설프게 과도한 개입을해서 중공같은 인접국가를 자극했다가는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2년 반 동안 죽도록 고생만 한다는 것이었죠.

    반면 리태조가 미국 의회에 가서 소련 원폭 공장 때려부수면서 시베리아로 북진하자 운운하던 건 그야말로 넌센스 수준으로 묻혔습니다.

    그러니 미국이 한국전의 경험에서 어떤 결론을 도출했는지는 뻔하죠. 실제로 미군은 (한국전 때와 같은) '북위17도선 이북으로 진공'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았죠.
  • 별일 없는 2015/12/23 09:41 # 답글

    결론은 도미노처럼 와르르르
    그리고 베트남이 동남아 패권국을 추구했으니 또 모르죠
  • 허안 2015/12/23 10:54 # 답글

    흠 그러네요. 만약 안 들어갔으면 왜 손놓고 있었냐는 질타를 받을 수도 있었겠네요. 결과론이긴 하지만요. 그럼 가장 현명한 것은 살짝 해보고 아니다 싶어서 조기에 나오는 것인가요? 그 어떤 병신과 함께 강한 적과 싸우더라도 이길 길은 있는 법이니 그 길을 찾아냈아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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