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칸트는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그에서 태어나 평생 한 번도 그 도시 밖으로 여행을 한 적이 없다는 유명한 에피소드를 남겼다. 그는 아주 늦게 47세에 겨우 교수가 됐는데 주저인 『순수이성비판』을 쓴 게 57세 때였고, 그 뒤 64세에 『실천이성비판』 그리고 66세에 『판단력비판』을 써서 3부작을 완성했다. 만약 칸트가 지금 한국에 온다면 애당초 교수되기도 어렵거니와 교수가 된다 하더라도 수년 동안 논문이 없어서 틀림없이 쫓겨날 것이다. 매년 논문 편수를 따져서 교수를 평가하는 현행 제도는 지나치게 단기적이다. 이러다가는 장기적, 근본적 연구를 하는 학자는 멸종되고, 한국 대학이 이상한 곳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공부가 좋아서 교수가 된다지만, 정작 교수가 되면, 논문 쓰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어떤 역설인가?
교수들이 논문 쓰느라 연구할 시간도 없고, 책을 읽을 시간도 없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 대학의 현실인 모양이다. ㅠㅠ
이 기사에서 본 또 하나의 재미있는 문장,
"쓴 논문 중 다수는 세 명(본인과 익명의 심사위원 2명)만 읽고 바로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지나친 평가가 대학을, 대학의 연구를 죽인다는 것일까?
좋은 평가를 받기위해서 연구업적의 압박에 시달린 나머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같은 대작은 커녕
단지 3명만이 읽는 무의미한 논문쓰기에 골몰하는 교수들이 한편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논문에 도움이 안되는
대학강의에는 대충인 경우가 많고,
이것이 다시 대학교육의 부실화도 귀결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말 답이 나오지 않는 한국 대학의 풍경이다.
덧글
그 때 제 지도교수가 이야기하기를 진짜 위에서 말씀하신대로 각종 과제와 논문 때문에 따로 뭔가를 연구하고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학생들이 시험과 과제 관련해서만 찾아오지 저처럼 일부러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일이 거의 없다면서 저에게 이렇게 찾아와줘서 말 걸어줘서 고맙다고 하셨죠.
제가 예전에 논문쓰기 전에 들은 이야기는 국내서적 5권 원서 2권. 적당히 짜집기하고 마지막에 자기 주장을 넣어서 분량만 채우면 된다는 식의 논문에 대한 특강을 들었던지라...
학생도 그런데 교수들이야 뭐...
칸트요? 칸트 할아버지가 와도 안 될 사회...에휴.
요즘 폴리페서라는 단어가 유행하던데, 교수님들이 시간적으로 참 자유로웠던 시절(80~90년대)에 어떤 단어가 유행했을까요? 텔레페서, 테니페서였습니다. 텔레페서는 강의만 끝나면 TV만 보는 교수, 테니페서는 강의 끝나면 테니스만 치는 교수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폴리페서? 이것도 물론 좋은 의미의 단어라고 하기 어렵지만, 최소한 텔레페서나 테니페서 보다는 진일보했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