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과에도 전성기가 존재했는가?" Le monde

테르모필레의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교육]
[사학과]

최근에 주변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오늘날 처럼  역사학 박사들이 취직하기가 어려운 시절은 없었던 듯 하다. 

이러 암울한 상황에서, 리처드 에번스의 다음 글을 보면, 마치 오래전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 하다. 대학 사학과의 전성기에 대한 글이다.

한국도 80년대, 90년년대초가 사학과의 전성기가 아니었던가 한다. 

한국 교육에서 대입 학령 인구가 감소함에따라 대학 정원 감축이 불가피해 진 상황이다. 그 감축의 주요 대상이 인문학 전공이 될 가능성이 높은 실정이며, 특히 정부와 여당에서 90%가 좌편향 잉여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도사리고 있는 학분분야로 역사학계를 지목하는 만큼, 사학과의 미래가 지금처럼 우울한 때가 없지 않았을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기 마련이고,
역사도 마찬가지다.



<사학과>

전문 역사학 그리고 그와 더불어 역사 지식의 산출과 고도의 전문화야말로 1960년대 초 이래 엄청난 팽창을 이루었다.. 1950년대에는 미국의 종합 대학 및 초급 대학에 재직하는 전문 역사가들의 전국적 조직인 미국 역사 학회 회원의 수가 몇백 명이었지만,1980년대에는 수천 명으로 급증하였다. 1960년대에 생존 중인 역사가들의 수가 그 이전 모든 시기에 살았던 역사가들을 더한 수보다 더 많다는 계산이 나왔다. 전문 역사학의 팽창은 그 이래 좀 더 빠른 속도로 전개되었다. 영국에서는 1960년대 후반에 로빈스 보고서에 뒤이어 설립된 신설 대학들이 거의 모두 사학과를 두었다. 그들 가운데 일부 - 예를 들어 요크 대학이나 워리크대학 -一 는 중요하고도 혁신적인 연구 때문에 곧바로 명성을 얻었다. 서독과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발전이 있었다. 1960년대 후반만큼 유급 전문 역사가 자리를 얻기가 쉬웠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 지식이 너무 빠르게 증가하여 단일한 학문 분야에 모두 함께 담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음을 뜻하였다. 『운송 사학』에서 『유태인 학살 연구』에 이르기까지 새롭고도 점차 전문적인 학술지들이 발간되었고 독일사 학회나 또는 의료 사회사 학회와 같이 전문화된 새로운 역사가 집단이 만들어졌다. 이들 단체에서 역사가들의 다수는 전적으로 전문 학자의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었다. 

리처드 에번스, 이영석 역, 역사학을 위한 변론, pp.228-229




덧글

  • ABS 2015/10/18 16:05 # 삭제 답글

    독일의 경우, 전후에 대학이 우후죽순으로 설립되면서 젊은 사학과교수들이 무더기로 탄생했다더군요.
    문제는 젊은 교수들이 잔뜩 생기니 순차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고(30대 교수들만 있으면 30년쯤은 늘 그대로죠), 그들이 은퇴할 때가 되자 후임을 안 뽑는 식으로 자리를 줄여버려서 전무후무한 '사학과의 좋았던 시절'을 경험한 세대가 되었다고.
  • 파리13구 2015/10/18 16:28 #

    감사합니다. ^^
  • 筆書家 2015/10/18 22:21 # 답글

    1. 다른 분야는 몰라도, 고대사분과는 확실히 그랬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60-70년대에 냉수리비/봉평비/중원고구려비가 출토되고 나서, 문헌사료의 영성함으로 인한 불확실한 부분들이 꽤 많이 시정되었달까....
    그리고, 그 유명한(...) 국가형성논쟁도 80-90년대 말까지 계속되었죠. 어째 결과는 좀 엉성하지만, '일단은 이게 제일 나으니까!'란 느낌으로 끝난 거 같습니다. 메데타시, 메데타시. 뭐, 지금은 이X일이 이걸 악용하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동북아역사재단이 이상한 분들한테 뭇매를 맞고 있지만서도... 으으.

    2. 일본사학계는 조-금 타이밍이 다른 것 같긴 합니다.
    거기는 전후 10-20년 동안에 하얗게 불태웠다고나 할까요. 일제시절 벌인 참혹한 전쟁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일본사학계는 중국사에 대한 재평가를 시작했고.. 지금도 중요시되는 논쟁들이 다 그 때 나왔더랬습니다. 동경학파/경도학파가 '확실히' 갈라선 것도 1949-1951년 간의 일입니다.
    시대구분론/진한제국론/사회경제사논쟁/토지제도사 논쟁 등등이 다 그 시절 처음 등장했고, 많이들 싸웠습니다. 지금이야 뭐, 으레 그렇듯이 점점 연구가 세분화/정교화된 것은 사실이고.. 수준 자체도 높아진 것이 맞지만서도, 60-70년대만큼 어떠한 주제에 대한 '논쟁'에 대해 <열성적인> 연구자들의 태도는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 경도학파의 원로격인 곡천도웅의 코멘트 입니다.
  • 파리13구 2015/10/19 10:37 #

    일본의 경우에 대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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