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스탈린은 왜 미국의 개입을 믿지 않았을까? Le monde

장개석,모택동 그리고 스탈린!


[한국전쟁]
[스탈린]
[애치슨 연설]
[미코얀]
[모택동]



<스탈린과 한국전쟁>

한국전쟁의 기원과 관련해서,

스탈린은 북한이 한국을 침공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오판했는가? 스탈린은 왜 한국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을까?

스탈린의 이러한 믿음의 근거들 중 일부는 도쿄의 맥아더와 워싱턴간의 비밀 전문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56년 9월 소련 미코얀(Anastas
Mikoyan) 부수상은 마오쩌둥에게,“ 한국전쟁 발발 이전에 우리 정보기관이
적의 전보를 해독했는데, 맥아더 장군은 워싱턴에 대한 보고에서 한반도의
남북 쌍방 간 군사충돌이 발생할 경우 미국은 여기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음을 언급했다(毛澤東,米高揚, 1956). 

출처-

션즈화, 극동에서 소련의 전략적 이익보장 : 한국전쟁의 기원과 스탈린의 정책결정 동기, p.4


당시 스탈린은 간첩을 활용한 정보수집 능력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 문건도 입수할 수 있었다. NSC-48 같은 문건이 그 예였다.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1949년 12월 하순 NSC 48/1 과 48/2를 마련했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중국을 거점으로 소련을 봉쇄 함과 동시에 아시아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고자 했으나 중국이 공산화되자 중국이 아닌 일본을 거점으로 하는 봉쇄정책(NSC 48)을 추진 하게 되었다. 스탈린은 워싱턴에 심어놓은 고위급 영국인 간첩 매클린 (Donald McLean) 을 통해 이 극비 문던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 된다. 극비로 취급됐기 때문에 소련의 정보분석가들은 아주 신뢰할 만한 정보로 간주했다. NSC 48/2 문서는 NSC 참모들이 입안해서 1949년 12 월 30일 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승인한 국가안보정책 보고서로, “한국(과 대만)을 미국의 극동방어선 외곽에 둔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얼 마 후인 1950년 1월 애치슨라인 설정을 통해 공개적으로 확인됐다.


출처-

이완범, 한반도 분할의 역사, P.429




덧글

  • 레이오트 2015/09/14 10:26 # 답글

    이런걸 보면 신이 밸런스 패치의 일환으로 미국 정보전에 너프를 먹인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지요.

    영국이었다면 이런 정보원의 존재를 진작에 알아차리고 그 정보원들을 죄다 멀티 크로스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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