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 애치슨 연설에 대해서... Le monde

장개석,모택동 그리고 스탈린!



[냉전]
[애치슨]
[키신저]
[미중관계]



1950년 1월의 애치슨 연설에 대한 한국의 일반적 관심사는 미국의 방어선에 한국이 포함되느냐 여부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헨리 키신저에 따르면, 애치슨 연설의 핵심은 타이완의 장개석 희생을 담보로, 미국과 모택동의 중국이 우호적 관계를 맺자는 제안이었다. 즉 모택동은 이념에 따라 소련이 아니라,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하고, 이것이 바로 중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제안이었다는 것이다. 애치슨은 이념이 아닌 국익에 기반을 둔 새로운 미중 관계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애치슨 연설은 장개석에 대한 미국의 지정학적 사형선고였다. 

중국 이야기에서 키신저는 애치슨 연설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

1950년 1월 I2일 전국 언론 클럽에서 행한 연설에서,애치슨은 이 백서의 요지를 한층 더 강조하면서 전반적으로 새로운 아시아 정책을 내 놓았다. 그의 연설에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세 가지가 담겨 있었다. 

첫째는 워싱턴이 중국 내전에서 손을 뗀다는 것이었다. 애치슨은 국민당이 정치적으로도 무능할 뿐 아니라,“그 어떤 군대의 지휘자에게도 볼 수 없었던 가장 역겨운 무능”을 드러내 보였다고 천명했다. 아울러 그는 공산당이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게 아니라” 상대가 만들어 준 기회를 재주껏 이용했다는 논리를 폈다. 장제스는 이제 “살아남은 부하들과 더불어 중국 해안에서 떨어진 작은 섬의 난민” 신세였으니 말이다.
본토를 공산당의 손아귀에 넘겨주고 말았으니,그 지정학적인 충격이 무엇이든 간에 타이완을 점령하고자 하는 공산당의 시도를 거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사실 국가 안보 위원회에서 작성하고 대통령이 승인했던 정책을 반영한 서류 NSC-48/2의 판단이 바로 그것이었다. 1949년 12월 30일 채택된 이 문서는 “타이완의 전략적 중요성은 노골적인 군사 행동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라고 결론지었다. 트루먼 대통령 역시 1월 5일에 열린 기자 회견에서 이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 : “미국 정부는 타이완의 중국군에 대해 군사 지원이나 자문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가 더욱더 중요한데,애치슨은 누가 장기적으로 중국의 독립을 위협하는가에 대해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공산주의라는 개념과 여러 가지 테크닉은 러시아 제국주의에게 새롭고도 은연중에 퍼지는 침투의 무기를 제공했다. 이처럼 새로운 파워로 무장 한 가운데 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소련은 중국 북부 지역들을 떼내서 소련에 갖다 붙이고 있는 것이다. 외몽골의 경우 이런 프로세스는 이미 완료되었고,만주에서는 거의 완료 직전이다. 그리고 내몽골과 신장에서도 소련 스파이들이 모스크바로 즐거운 보고서를 보내고 있음에 틀림없다. 바로 지금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애치슨의 연설에 담긴 마지막 강조점은 미래에 대한 함축된 의미로 볼 때 훨씬 더 심각했다. 그것은 중국에게 티토가 택했던 옵션을 노골적으로 제안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애치슨은 국익에 기반을 둔 대중국 관계를 제시하면서, 중국 국내의 이념과 상관없이 ‘온전한 중국’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지금껏 견지해 온 입장을 고수해야 한다. 누구든 온전한 중국을 해치는 자는 중국의 적이며,우리 자신의 이해와도 어긋나게 행동하는 것이다. 애치슨은 이념이 아니라 국익에 기반을 둔 새로운 중 • 미 관계를 위한 전망을 보여 주었다.

“동서 간의 낡은 관계, 최악의 경우는 착취였고, 잘해 봐야 온정주의에 지나지 않았던 관계가 자취를 감추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그런 관계는 끝났고, 이제부터 극동에서 동서 관계는 상호 존중 및 상호 협력의 관계여야만 한다.” 


출처-

헨리 키신저, 중국 이야기 On China , 민음사, 2012 ,pp.156-158



-만약 중국의 모택동이 애치슨의 우호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미중 수교는 1970년대가 아니라 1950년에 이루어졌을 것이고,

중국은 대만을 1950년대초에 통일했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장개석을 살렸다.




덧글

  • 블루 2015/09/10 14:32 # 답글

    한반도 대만에 인도차이나까지 넘기려고 했죠.
    저때 모택동이 저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우린 좀 암울한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겁니다.
  • 파리13구 2015/09/10 14:36 #

    덜덜..ㅠㅠ
  • Real 2015/09/10 17:16 # 답글

    저게 성립되었다면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전혀 행사할수 없었겠죠. 게다가 일본을 재무장해야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균형현실을 맞출수도 없었던건 기본인데다가 독일과 같은 청산과정도 대충이었으니 오히려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은 발휘할수 없는 환경에 처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나마 냉전 끝나고 나서 현재 동남아 수준에서의 활동정도를 했을려나요?
  • 파리13구 2015/09/10 18:15 #

    아마도 일본을 거점으로 방어선을 구축했을 겁니다.
    그리고 베트남전도 없었을 겁니다.
  • Real 2015/09/10 18:24 #

    그 일본을 통제할수 없으니 그게 문제겠죠.ㅋ 이미 언급드린 한국과 일본 그리고 호주를 연계하는 균형의 현실을 맞출수 없는 형태니까요.
  • 무지개빛 미카 2015/09/10 19:39 # 답글

    저런 착각이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을 통해 미군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장성이 포로로 잡히고 수많은 미군들이 저기서 죽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이기지 못한 전쟁을 겪게 되니,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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