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은 NSC-68 을 언제 최종승인했는가? Le monde

역사가 마거릿 맥밀런 Margaret MacMillan



위키백과에 따르면, NSC-68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고 제68호 또는 통칭 NSC-68은 미국 트루먼 정권기 중 1950년 4월 14일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작성한 전체 58쪽의 비밀 정책 문서이다.

조갑제는 NSC-68을 공산주의를 멸망시킨 문서?라고 정의했다. 

종전 이후 미국은 군규모와 국방예산을 크게 감축 중이었다. 종전 직후 1200만명이있던 군인 수는 1947년 150만으로 줄었고, 전시에 최고 909억 달러까지 올라갔던 국방 예산은103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런 국방예산 감축 분위기에서,  NSC-68은 국방비를 세 배 늘려야한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냉전의 군사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49년의 소련 핵실험과 중국 공산당의 혁명 성공이라는 세계정세 급변사태에 대한 미국의 대전략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 보고서였다.


그런데, 한국미국사학회의 사료로 읽는 미국사, 궁리, 2006, p.369을 보면, 다음 내용이 있다.


"정책기획실장 폴 니츠를 중심으로 국무부가 국방부와 긴밀한 협조 속에서 작성해 1950년 4월 14일 대통령의 최종승인을 받은 보고서가 바로 ‘국가안보회의 문서 제68호 이다. "


트루먼이 이 보고서를 최종승인, 즉 서명한 것이 4월 14일 이었나? 

잘못된 서술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가 대통령에게 이 문서를 제출한 것이 4월 14일이었다. 

핼버스텀에 따르면, - (한국전쟁 발발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NSC-68을 최종 승인하지 않고 한국 상황을 지켜보던 참이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 p.295]

위키백과에 따르면, 트루먼이 NSC-68에 공식 서명한 것은 1950년 9월 30일이었다. 원래 이 문서는 극비문서였는데, 비밀이 해제된 것은 1975년이었고, 해제를 결정한 사람은 헨리 키신저였다. 


4월 14일, 이 보고서를 읽은 트루먼은 보고서의 주장에 대해 유보적이었다. 미국 납세자에 대한 부담이 될 증세가 불가피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가운데, 트루먼의 고민을 날려버릴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6월 25일의 한국전쟁 발발이었다. 사문화될 위기에 있던 NSC-68을 살려준 것이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트루먼이 50년 9월 30일이 이 보고서에 서명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 국무부의 한 관리는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한국이 우리를 구했습니다."라고 했다. 한국전쟁에서의 공산주의 세력의 침략 덕분에, 미국 정부가 군비 지출 증가의 확실한 명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