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1.4후퇴와 영국의 딜레마 Le monde

"영국이 한국전쟁에서 얻은 교훈은?"


1950년 1월, 중국과 북한군의 반격으로 38선이 다시금 무너지고, 전쟁의 중국으로의 확전 위험이 높아지자, 미군과 함께 유엔군의 주축을 형성했던 영국은 다음과 같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 미국과 함께 죽느냐, 아니면 독자생존을 모색하느냐? 

트루먼 행정부가 한국전쟁의 중국으로의 확전을 쉽게 결심하지 못한 것은 영국 등의 동맹국 압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윌리엄 스톡의 지적이다.

아시아와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보며 영국의 전쟁성 장관 존 스트래치 (Min Strachey)는 불안했다. 유엔군의 완전 승리로 보였던 상황에서 중국과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내려온 것이었다. 이 상황 에서 미국은 중국으로 전쟁을 확대시킬 것처럼 보였다. 유럽에서 나토 가입국들이 자신들의 군사력과 동구권 국가들의 군사력의 격차를 줄이기도 전에 미국은 서독을 조기 재무장시키기 위해 압력을 가했다. 게다가 소련의 언론들이 크렘린은 서독군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선전하고 나선 것은 불길한 예감을 주었다. 미국이 현재 의 위기 상황에서 자기 멋대로 해버린다면 전면전이 아마도 앞으로 2 년 이내에 일어날 것이라고 1월 2일 스트래치가 외무상 어니스트 베빈에게 편지를 보냈다. 미국이 당분간 군사 면에서 우세하다 하더라도 전쟁은 “거의 확실하게 영국에게 치명적”이 될 것이었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소련은 유럽을 점령해 영국해협까지 이를 것이며, 핵무기가 없을지라도 영국의 남단 전부와 (런던까지 포함해서) 서남부를 부분적으로 황폐화시키거나 적어도 “마비시켜버릴” 것이었다. 

따라서 영국의 애틀리 정부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소련의 군사 공격을 각오하더라도 중국과의 전쟁에서 미국을 따르거나 아니면, “유엔과 기타 지역 에서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스트래치에게 올바른 선택은 후자였다. 약점이 무엇이든 다른 길은 자멸을 의미했다. 


윌리엄 스톡, 한국전쟁의 국제사, pp.292-293





덧글

  • ㅁㅁ 2015/08/19 00:06 # 삭제 답글

    트루먼이.나중에 김종필한테.영국 사람들때문에 통일을 못 시켜줘서 미안하다고 했다죠...
  • asdf 2015/08/19 00:33 # 삭제 답글

    생각해보면 영길리들은 근현대사에서 러시아 견제하느라 펼친 외교정책이 한반도 정세에 도움이 안 된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