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영미의 분열과 소련의 이이제이? Le monde

"영국이 한국전쟁에서 얻은 교훈은?"

한국전쟁 초기 유엔군의 두 축인 미국과 영국은 중국의 유엔가입, 대만해협 문제로 입장을 달리했고, 이것이 한국전쟁 초기 중재의 걸림돌이 되었다고 한다.

1950년 7월, 영국 외무장관 어니스트 베빈은 한국에서의 38선 회복을 타이완 해협에서의 미군 철수 그리고 공산 중국의 유엔 가입 숭인과 연계하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의 애치슨 국무장관이 이를 반대했다. [역자주- 1950년 6월 27일 미국이 제7함대를 타이완 해협에 파견했다]
 영국의 중재안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확고했다 : 미국은 한국의 38선 회복 이외의 어떤 조건도 받아들일 수 없다.  

소련은 영국과 미국이 한국전쟁을 종결짓는 데 같은 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1950년 1월 이후 두 정부는 중국 정책에 대한 이견을 보여주었는데,미국은 타이완에 있는 국민당 정권을 계속 지지했고 영국은 본토에 있는 공산주의자들을 인정했다. 영국 외무성의 가이 버지스(Guy Burgess)와 도널드 맥클린(Donald Maclean)이 영 • 미 관계에 관한 서류를 소련 간첩에게 넘겨줌으로써,스탈린은 중국의 유엔 가입을 위해 수개월 동안 노력하고 있던 영국의 클리먼트 애틀리 (Clement Attlee) 노동당 정부가 6월 말 미국의 타이완 해협 개입으로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추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소련과 중국인들은 미국 제 7함대의 활동과는 상관없이 타이완의 궁극적인 해방을 공개적으로 언급함으로써 확전을 우려하는 영국과 인도를 이용하려고 했다. 


참고-

윌리엄 스톡, 한국전쟁의 국제사, pp. 10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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