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한국전쟁에 개입한 이유는?" (끝) Le monde

"영국이 한국전쟁에서 얻은 교훈은?"

<사진-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산하 프랑스 대대>


[냉전]
[프랑스]
[한국전쟁]
[프랑스 공산당]

프랑스 공산당이라는 내부적 압력 때문에, 프랑스 당국은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을때 매우 당황했다. 당시 프랑스 공산당은 프랑스에서 가장 강력한 정파였다. [역자주- 공산주의자들이 항독 레지스탕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덕분이었다.] 이미 8년동안 지속된 상태였던 인도차이나 전쟁은 프랑스에서 인기가 없었고, 프랑스 정부는 한국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지출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고, 따라서 프랑스 공산당이 이런 불만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에 프랑스는 유엔과 미국의 요청에 부응하기로 결심했다. 프랑스의 한국전쟁 개입 문제는 1950년 8월 18일에 국방위원회 the National Defense Committee 에서 논의되었다. 그때 오리올 대통령은 인도차이나에서의 프랑스의 현실 때문에, 프랑스의 한국전쟁 참여는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고 발언했고, 이는 순수한 상징적 개입이 될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 "이런 행동을 실천할 수 밖에 없고, 워싱턴의 프랑스 대사관에 지령을 발송, 미국측에 프랑스의 입장을 설명하고, 인도차이나에서의 우리 활동의 중요성과 의미를 강조해야만 한다." 

프레방 총리도 이에 동의했다. 프랑스의 전쟁 개입은 좋은 전례가 될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 "더욱이, 이는 우리가 매우 자주 옹호했던 국제연합의 집단안보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합의에도 불구하고, 국방장관 쥘 모흐  Jules Moch 는 "심지어 의용군 파병도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발언했다. 또한 국방장관은 프랑스 개입의 정치적 중요성에 대해서도 의문이라고 발언했다. 왜냐하면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 즉 공산당이 최대 정치 세력이고, 공산당이 남한의 북침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프랑스 개입이 적절하냐는 반론이었다. 뿐만아니라, 공산당의 선동 때문에 모흐 장관은 한국전쟁에 대한 북한의 책임에 회의적이었고, 남한도 전쟁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한국에 1개 대대 이상의 파병을 반대했다. 

장 르투르노, 인도차이나 3국관계 담당 장관 (the Minister of the Relations with the Associated States-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와의 관계를 담당하는 장관)도 한국에 1개 대대를 파병하는데 동의했다 ; "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논리에 부합하게 되고, 우리는 국제적 차원에서 인도차이나에서의 우리 상황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한국전쟁에 대한 우리의 개입은 비록 소규모라고 하더라도, 인도차이나에서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을때 연합국의 도움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프랑스의 한국전쟁 개입은 인도차이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1950년 6월 27일 연설을 통해서 파리를 극찬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고, 특히 인도차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 증가에 대해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플레방 총리는 "비록 상징적이지만 한국전쟁에 개입하면, 우리는 많은 이익을 누릴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악이다."라고 해명했다. 5일 뒤, 프랑스 관보는 자원병으로 구성된 대대의 창설을 공개했고, 이 대대는 유엔 깃발 아래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위해서 창설된 것이었다.


출처-

Laurent Quisefit, The French Participation in the Korean War and the Establishment of a “Path of Memory” in South Korea, Societies 2013, 3, 427–444, 2013.   



- 윌리엄 스톡에 따르면,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은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에 대한 군사 원조를 대폭 확대했다.

이렇게, 한국전쟁은 디엔비엔푸를 매개로

미국의 베트남 비극의 서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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