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스탈린 치하 소련 외교정책의 파벌주의? Le monde

"영국이 한국전쟁에서 얻은 교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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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자신의 냉전전략으로 조지 캐넌의 봉쇄정책을 채택할 동안, 스탈린 치하 소련의 외교정책에는 온건파와 강경파간의 대립이 있었다고 한다.

다음은 윌리엄 스톡의 지적이다.


스탈린 치하 소련 외교정책의 파벌주의

스탈린이 행사한 권한의 범위와 불안의 정도가 어떠했건 간에 부분적으로는 확실히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는 대외 정책에 관해 내부적으로 많은 토론을 벌였다. 1949년과 1950년 사이 소련 신문에는 거의 비슷한 두 가지 노선이 존재했다. 

한 노선은 당 기관지인 《프라우다>>를 주된 대변자로 이용했는데,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미하일 스슬로프(MikhaU Suslov)와 같은 관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다른 정부 기관지인〈〈이즈베스티야>>를 주된 대변 기관으로 이용했으며 게오르기 말렌코프(Georgii Malenkov)와 라브렌티 베리아(Lavrentii Beria) 등의 지지를 받았다. 

첫 번째의 “호전적” 노선은 자본주의 국가들은 소련권에 본질적으로 적대적이며 합의 사항을 이행할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미국 정책에 대한 반대는 서유럽 국민들과 정부들 사이에 점차 증가하고 있고 또한 미국 자체가 점차 심화되어가는 경제적 위기로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소련이 계속 서방에 압박을 가한다면 미국은 곧 해외에서의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환상을 깨고 서반구로 후퇴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것에 비해 두 번째의 “온건” 노선은 서방 열강들 내부나 또는 그들 사이의 모순과 미국의 경제적 문제를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 대신 서부 유럽에서의 미국의 진출과 그 지역에서의 미국의 경제적 착취로 얻는 이점을 강조했다. 소련의 압력은 서방 동맹국들을 강화시켰기 때문에 국제적 긴장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으며,소련의 화해적 움직임은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강화시키려는 미국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보았다.

1949년 12월 온건파가 경제 개발과 더불어 동유럽의 군사력 증강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이미 증가되고 있던 군사비 지출에 대해서 대내적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기로 하는 한편 호전파가 장기적인 평화 공존에 관한 노선을 수용함으로써 타협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1950년 전반 6개월 동안에는 소련 신문지상의 논쟁이 시들해졌다. 스탈린은 아시아에 존재하던 더 좋은 상황에 관심을 쏟기 위해 서유럽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정책을 펴기로 결정했다...

적어도 소련은 유고슬라비아 침공 계획을 연기시켰고, 서유럽에 대한 선전으로 소련의 평화 운동을 집중 부각시켜려 노력했던 것이었다.  


출처-

윌리엄 스톡, 한국전쟁의 국제사, pp.71-72.




덧글

  • 2015/08/15 20: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8/15 20:3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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