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한국전쟁에 개입한 이유는?" (2) Le monde

"영국이 한국전쟁에서 얻은 교훈은?"

[냉전]
[프랑스]
[한국전쟁]
[베트남]


(한국전쟁 발발 직후 프랑스는 총리 사퇴로인한 정권 공백상태에 있었다.) 

결국, 7월 12일, 르네 플레방 René Pleven 이 총리에 임명되었다. 그의 첫 의회 연설에서, 그는 한국 상황을 언급했다. 이는 군대를 파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부 안정을 위한 국민 통합을 호소하기 위해서 였다 ; 그는 통합의 필요성, 냉정과 높은 사기, 규율, 조국을 위한 관심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연설의 목적은 프랑스가 국제문제 개입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총리는 프랑스가 유엔에 충성을 바칠 것이며, 두 개의 한국간의 중재를 지지할 것이고, 따라서 협상을 위한 영국과 인도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천명했다. 특히 1950년 10월의 인도의 중재 노력과 1950년 11월 영국의 완충지대 설정 제인 그리고 같은 해 12월의 인도의 휴전 교섭을 위한 3인 위원회 결성 제안 그리고 각종 중재 노력들을 프랑스가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한국 뉴스는 1950년 여름 동안 매우 나빴다. 많은 프랑스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몇몇 프랑스 국민들이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지 단지 5년만에 새로운 전쟁이 발발한 것을 두려워 하면서, 캔으로 된 음식, 설탕,비누 그리고 기타 필수품들을 사재기하는 것에 주목했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국제관제 전문가 레이몽 아롱은 이를 준-공황상태라 해석했지만, 다행히도 이러한 상황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1950년, 프랑스는 아시아 대륙에서 이미 전쟁 중이었고, 호지명의 베트민 군대에 의해서 프랑스 군이 큰 손실을 입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인도차이나 전쟁은 거의 대중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프랑스는 제2차세계대전의 몇몇 상처도 치유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인도차이나 전쟁은 세계대전으로 약화된 프랑스 같은 나라에게는 너무 비용이 많이 드는 전쟁이었다. 뿐만아니라, 인도차이나는 프랑스에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졌고, 프랑스의 식민행정 당국 규모는 모두 합해서 3만명에 지나지 않았다. 반대로, 프랑스의 군사 개입은 대규모였다. 프랑스의 이른바 극동 원정군 Corps Expéditionnaire d’Extrême-Orient (Far East Expeditionary Corps) 은 9만4000에서 15만명에 달했고, 프랑스 홀로 전쟁의 재정적 부담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정치적 의제는 유럽 자체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었고, 특히 프랑스 국내문제, 가령 고용,재건,교육이 주요 의제였고, 소련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서 프랑스군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였다.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 프랑스 정부의 주요 관심사들이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와 유럽 문제에 관심을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이상과 같이 프랑스가 한국문제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외교는 즉시 대응했고, 유엔 안보리에서 프랑스의 동맹국와 행보를 같이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남침 이후, 프랑스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신문으로 안보리 결의안 82호, 즉 북한의 공격이 평화에 대한 위반이며, 북한 당국에게 군대의 철군을 요구한 결의안에 찬성했다. (6월 25일, 뉴욕시간) 그리고 프랑스는 6월 27일의 안보리 결의안 83호,즉 유엔 회원국들이 무장 공격을 격퇴하기 위해서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에 찬성했다. 7월 7일, 영국 대사와 함께, 유엔주재 프랑스 대사가 유엔군의 지휘권을 미국에게 위임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결국 당시 일본의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이 한국의 유엔군 지휘를 맡게 되었다.

1947년 이후 뱅상 오리올 대통령이 이끄는 사회주의 정권 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7월초부터 인도차이나에서 작전 중이던 라 그랑디에르호 FS La Grandière 를 파견하면서 한국 분쟁에 빠르게 개입했다.  

하지만 이상에서 언급한 것처럼, 프랑스군이 이미 아시아에서 전쟁중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인도차이나 혹은 유럽으로부터 더많은 군사 자원이 다른 곳으로 전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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