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한국전쟁에 개입한 이유는?" (1) Le monde

"영국이 한국전쟁에서 얻은 교훈은?"


<사진 설명
프랑스의 반-한국전쟁 포스터 : 프랑스 공산당 계열의 선전물로 추정된다. 
1950년

한국에서, 미국의 폭탄이 여성과 아동들을 학살한다.
범죄를 멈추기 위해서 그리고 이러한 학살이 내일, 우리 차례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즉시 저항에 나서야 한다.

-폭격의 즉각적인 중지
-한국 전쟁의 종식>



[냉전]
[프랑스]
[한국전쟁]
[베트남]

파리에서의 정치적 불안때문에, 프랑스 내각이 1950년 6월 24일에 총사퇴했다. 이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그 순간 프랑스가 정부 공백상태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에서의 전쟁발발 소식이 파리에 전해졌을때, 프랑스 대통령 뱅상 오리올 Vincent Auriol 은 새로운 내각 구성을 위한 신임 총리를 물색 중이었다. 오리올은 새 정부대표를 고르기 위해서 여러 정치인들을 만났다. 당시 프랑스 정치에서 프랑스 대통령은 정치적 영향력이 거의 없었고, 실권은 내각 의장인 총리에게 있었다. 그날 오후, 오리올은 프랑스 외무부의 총비서 알렉상드르 파로디 Alexandre Parodi 를 소환, 한국 위기에 대해 논의했다. 한국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은 높았고, 당시의 한국 상황은 다음의 3가지 우려되는 질문을 제기했다.

1) 한국에서의 전쟁은 진정으로 분리된 분쟁인가 아니면 일종의 기만인가? 즉 유럽으로부터 미군을 빼내기위한 미끼이면서 그들을 한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속임수인가?

2) 유럽은 동양과 서양간의 열전 a “hot” war 의 다음 장소인가?   

3) 북한이 실제로 남한을 침략했는가 혹은 공산당 선전의 주장처럼 미국이 먼저 공격했는가?

결국, 1950년 6월 30일. 온건 사회주의 정치인 앙리 퀘이으 Henri Queuille 가 총리에 임명되었다.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그는 의회에서 연설했다. 이 연설에서 그는 심지어 인도차이나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초로, 국제연합 탄생으로 확립된 집단안보의 원칙이 한국에 적용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발언했다. 

하지만, 내각을 구성한지 얼마후인 7월 4일, 퀘이으는 의회의 불신임을 받았다. 표결에서 334명이 그에 반대했고, 단지 221명만 그를 찬성했다. 그 결과, 프랑스는 다시한번 정부 공백상태에 빠졌다.


Laurent Quisefit, The French Participation in the Korean War and the Establishment of a “Path of Memory” in South Korea, Societies 2013, 3, 427–444, 2013.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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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abcdefg 2015/08/19 13:12 # 삭제 답글

    본문하고 관곈 없지만 아기 인상을 정말 더럽게 그려놨네요. 눈찢어진 과장된 인종묘사만 신경쓰느라 애얼굴을 무슨 조폭인상처럼 그려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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