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조지 캐넌의 봉쇄정책의 한계는? Le monde

닉슨, 키신저에게 외교의 목적에 대해 묻다!


[냉전]
[키신저]
[봉쇄정책]
[조지 캐넌]



키신저 회고록에 따르면, 조지 캐넌의 봉쇄정책은 지나친 군사적 세력균형론이었고, 따라서 전후 질서를 위한 협상을 연기하게 만든 정책이었고, 역설적이게도 소련에게 자신의 정복지를 공고히 만들고, 핵불균형을 시정할 시간을 제공한 정책이었다. 확실히, 종전 직후 중유럽의 대규모 소련군은 그들에 대항해서 배치된 군대 보다 더 많았다; 또한 서유럽은 쇠약했고, 미국은 군대를 해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련의 진정한 힘은 우리 스스로의 분열에 있었다. 소련은 4년간의 전쟁으로 지쳐있었고, 2천만명의 사상자가 있었다. 미국은 핵무기를 독점하고 있었고, 이후 20년동안 핵무기로 소련을 크게 압도하게 될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의 상대적 힘은 냉전 초기만큼 더 강한 적이 없었다.

둘째, 군사 기술의 성격상으로, 세력 균형이 더이상 과거와 같은 것이 될 수 없었다. 핵무기는 너무 가공할만하기 때문에, 핵무기 보유가 증가하면 할수록 모든 예상되는 공격을 맞서기에는 덜 유용해진다. 얼마동안 이러한 현실은 미국의 핵무기 독점과 이후에는 핵무기의 수적 우위에 의해 가려졌다. 하지만 이 문제는 크렘린이 핵무기 기술을 보유하게 되자 드러나게 되었고, 이로 인해서 핵보복 위협의 신뢰성이 감소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군사적 세력균형은 2가지 차원의 조심성을 유지해야 했다. 전략적으로 핵무기 뿐만아니라 국지적으로 재래식 무기도 충분히 강하게 유지해야만 했다. 미국의 핵보장이 여전히 과거와 같은 진지함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한다고 하더라도, 핵의 교착상태란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대안적인 지역 방어 무기체계가 필요하게 되었다. 

셋째, 봉쇄정책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현대적 영향력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결코 될 수 없었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국가간의 분쟁을 두 개의 철학간의 갈등으로 변질시켰고, 국내적 동요를 통해서 세력균형에 도전을 가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자신의 절대적 우위가 한창일 동안, 미국의 상대적 힘이 소련이 전후에 회복함에 따라 쇠락하게 된다는 것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미국의 외교적 군사적 힘은 봉쇄정책이 시작된 1940년대말에 정점에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때가 유럽의 장래에 대해서 진지한 토론을 해야만 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우리는 기회를 잃었다.


Henry A. Kissinger, White House Years, p. 62





덧글

  • Megane 2015/08/13 01:49 # 답글

    으아~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 파리13구 2015/08/13 02:27 #

    ^^
  • NEO rep 2015/08/13 10:42 # 답글

    키신저의 "외교"라는 책을 원서로 읽으려다 실패...

    급수가 다르더군요...
  • 파리13구 2015/08/13 11:20 #

    번역이 나오기를 바랍니다만...

    번번히 실패하더군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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