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누구와 결혼했는가?" Le monde

역사가 마거릿 맥밀런 Margaret MacMillan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에드바르트 베네슈 Edvard Beneš]
[폴란드][체코]
[동유럽]
[나치 독일][소련]
[뮌헨협정]

미국의 카터 대통령의 국가안보 보좌관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1928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그는 폴란드 귀족집안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폴란드 외교관이었다.

아버지 타데유스 브레진스키 Tadeusz Brzeziński 는 1931-1935년 독일에서 근무했다. 따라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유년 시절에 나치 독일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스탈린의 대숙청이 한창이던 시절인 1936-1938년에 소련에서 근무했다.

타데유스 브레진스키는 1939년 캐나다로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1939년 독소불가침 조약에 의거, 조국 폴란드가 나치 독일과 소련에 의해 분할점령되면서 브레진스키 가족은 조국 폴란드로 귀국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렇게 어린 시절에, 나치 독일과 소련에 의해 조국이 유린된 아픈 기억을 가진 즈키그뉴 브레진스키는 누구와 결혼했는가? 브렌진스키는 체코계 미국인 조각가 에밀 베네슈 Emilie Benes와 결혼했다. 그녀는 체코슬로바키아 전-대통령 에드바르트 베네슈 Edvard Beneš의 조카였다. 

베네슈는 누구였는가?

에드바르트 베네슈 Edvard Beneš

1884년-1948년. 체코슬라바키아의 정치가. 마사리크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고, 독립 후 외무부장관과 국제연맹에서 활약하는 한편,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소협상을 주도했다. 1935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뮌헨협정으로 사임하고 런던으로 망명했다. 종전 후 귀국하여 대통령(1946년)이 되었지만, 1948년에 공산당이 정부를 전복하자 사임했다. 

결국 베네슈는 한번은 나치 독일에 의해, 다른 한번은 소련에 의해서 사임당한 아픔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이러한 가족사적 배경을 고려하면,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강한  반-소련 정책을 조언했던 것은 이해가 가는 일이다.

또한 브레진스키는 독일에 대해서도 원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그 불똥이 튄 것은 서독의 헬무트 슈미트 였다고 한다.

카터 정권하에서, 카터와 서독의 슈미트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카터는 브레진스키에게 자신은 슈미트가 "싫었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렇게 카터는 슈미트에게 무례하게 대했고, 브레진스키는 이를 방관했다는 것이다. 

가톨릭 교도 폴란드인 출신으로, 제2차세계대전 이전에 폴란드 귀족집안 외교관의 아들이었던 브레진스키가 독일의 중하층계급 출신으로 한때 히틀러 청년단 회원이었던 사민주의자 슈미트에 대해 편견을 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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