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에서 지도자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Le monde

"대선이 네거티브로 흐르는 이유는?"


[콜린 파월]
[리더십]

전장에서 대대장이 있어야 할 곳은?

콜린 파월에 따르면, 결정적인 순간, 즉 리더가 필요한 순간, 진정한 리더라면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의 한국 대통령들을 보면, 현장 중심의 밀착형 리더십이 강조되면서 대대장도 아닌 군통수권자가 적과 대치중인 최전선에서 마치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것 같은 방식의 리더십이 관찰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물론 대통령이 때론, 얼굴마담의 역할을 해야만 할때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렇다.

파월은 다음을 조언한다.

사람이 존재하는 장소 자체만으로 성공과 실패를 가를 수 있다. 700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산을 올라 돌격하는 대대장은 용감하고 영감을 주는 존재일지는 모르지만,그는 그 순간에 그저 살려고 애쓰는 한 사람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그는 전체 전장을 볼 수 없다. 그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는 모든 부하들과 의사소통 하거나 추가 지원을 준비하거나 지속적으로 상급 부대 본부에 보고를 할 수도 없다. 소총을 쏘며 더는 부대를 지휘하지 않는 대대장을 두고 우리는 ‘최후결전 중인 대대장‘이라 부른다. 

[콜린 파월, 콜린 파월의 실전 리더십, 98-99.]

한국 정치의 최근 사례를 보면, 산에 올라 돌격을 외치는 대대장식의 "최후결전형 리더십"도 문제지만, 중요한 순간에 리더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가령, 대대장이 지휘본부에도 없고, 소-영웅주의에 사로잡혀 돌격을 외치는 자리에도 없고, 위기상황에서 지휘관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고, 어디있었냐는 질문에 대해 '사생활 보호'라는 대답만이 돌아오는 리더십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른바 깨알형 리더십도 문제다. 리더가 작은 문제에 까지 세심한 관심을 보여주는 리더십을 말한다. 이런식의 '깨알 리더십'은 제2차세계대전의 고트 , 영국 해외원정군 총사령관식의 리더십과 문제를 공유한다. 이에 대해서 앨런 브룩은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고트 Gort 경은 제2차세계대전 프랑스 전투에서, 영국 해외원정군 총사령관이었다.당시 그의 휘하 제2군단장이었던 앨런 브룩은 그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나는 그를 마음으로부터 존경하고 우러러봤다. 그러나 야전군 규모의 대부대를 지휘한다는 것은 개인 성품과 무관하다.그의 지도력에는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나무만 보고, 숲 전체를 보지 못했다. 그는 수류탄의 바른 사용법, 정찰병의 인원수, 눈 위에 난 발자국 식별법, 고립된 감시초소에 가설할 철조망,정찰 및 야간 사격요령 등...에 관해 정력적으로 지도하고 역설하며 다녔지만, 보다 광범위한 전략적 문제를 토론하는 것을 기피했다."

한 번은 고트와 앨런 브룩이 함께 전선시찰을 나갔을 때, 그 일을 브룩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그 날 밤 현지에서 1박하면서, 자신이 직접 정찰을 나가고 싶다고 우겨댈 때의 그의 눈은 흥분한 나머지 번쩍이고 있었다."

앨런 브룩에 따르면,"한가지 불행한 것은 그가 언제나 잔 일에만 신경쓴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방어체계, 벨기에로의 전진로, 독일군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벨기에로 진출하기 보다는 현 국경진지를 확보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 등의 전략적 문제에 대해 그가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정작, 그의 관심사는 소대 업무일지 작성, 모래주머니 사용법, 그리고 부비트랩 설치요령 등 세부적인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고트의 세밀한 리더십의 결과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영국군의 참패였고, 영국군을 중심으로한 연합군은 이른바 덩케르크 철수를 단행해야만 했다. 

고트 경은 총사령관의 지위에 있었지만, 전선의 소대장 수준의 관심사에만 몰두한 나머지, 적군 독일군의 대전략에 맞서 영국군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구상에 게을리한 실책을 범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1월 22일자, 조선일보 양상훈의 <대통령 조화에 대한 믿기 힘든 얘기>라는 글을 읽어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고트 경과 유사한 오류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자신이 다 챙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고위 공직을 지낸 분이 상(喪)을 당했는데 그 상가에 당연히 있을 법한 대통령 조화가 없었다고 한다. 대통령과의 관계도 특별한 사람이었다. 청와대가 모르는 줄 알고 몇 사람이 청와대에 알렸다. 금방 올 것 같았던 조화는 늦어도 너무 늦게 왔다.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사정을 알아보았다. "조화를 보내려면 대통령 허락을 받아야 하는 모양"이라는 게 그들의 결론이었다. 이 말이 믿기지 않았는데 얼마 후에 비슷한 얘기를 또 듣게 됐다. 상을 당한 다른 사람에게 관련 분야 청와대 수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수석은 "대통령님 조화를 보내겠다"고 했다. 조화는 끝내 오지 않았다. 궁금했던 상주(喪主)가 나중에 수석에게 물었더니 "조화는 수석 결정 사항이 아니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조화 보내는 것도 대통령 결재를 받아야 하는 게 사실이라면 다른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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