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과 걸프전 그리고 미국의 유혹?" Le monde

소위 시절, 콜린 파월이 경험한 냉전은?


[한국전쟁]
[걸프전]
[전쟁목표]

1950년의 한국전쟁과 1991년의 걸프전에서, 미군을 중심으로 한 동맹군이 적에대해 압도적인 우세를 점한 상황에서, 트루먼과 조지 부시의 워싱턴은 유사한 유혹에 시달렸다. 초기의 전쟁 목표를 달성한 만큼, 이제 전쟁을 그만 둘 것인가 아니면 전쟁의 근원을 완전히 제거해야 하는가? 트루먼이 후자를 선택했다면, 조지 부시는 전자를 선택했다.

키신저에 따르면, 트루먼의 선택은 문제가 있었다. 전쟁동안 미국은 군사작전과 외교를 조율하는데 실패했다. 특히 1950년 9월 15일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한 직후, 전쟁이 일시적으로 공산국가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트루먼 대통령은 협상을 선택하지 않았고, 적의 완전한 패배를 추구했다. 물론 그의 결정은 협상 없이 적에 대한 무조건 승리를 바라는 미국의 여론을 반영한 것이었다. 결국 트루먼은 미국의 능력을 과대평가했고, 북한을 지원하는 공산국들, 특히 중국의 결의를 과소평가했다. 

키신저의 주장이란, 중공군이 개입하기 전에, "우리가 가장 강력한 군사적 지위를 차지고 있었을때" 대통령이 워싱턴에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을 제안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걸프전에서의 조지 부시의 선택은 어떤 것이었나?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쿠웨이트에서 이라크 세력을 몰아낸다는 전쟁 목표를 달성했을 즈음, 워싱턴은 쿠웨이트 국경을 넘어 이참에 바그다드까지 진격해서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고, 이라크의 정권교체를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란 유혹에 시달렸다. 그리고 이 유혹을 극복했다. 

그 이유를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콜린 파월은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그러나 사담을 쫓기게 해 놓고 왜 바그다드로 진격해 가지 않았는가? 왜 우리는 그를 해치우지 못했는가? 잊혀져 가는 듯한 한 가지 사실은 미국이 앞장서는 동안,우리는 명백히 규정된 유엔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국제적’ 연합을 인솔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임무는 완수되었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사막의 폭풍 작전이 페르시아 만을 베트남처럼 만들지 않을 것이라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지정학적인 견지에서 연합,특히 아랍 국가들은. 이라크가 침공 되어 떨어져 나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 전투 전에 나는 사우디 아라비아 주재 미국 대사인 찰스 프리먼이 보낸 전보 사본을 받았다 : “일련의 이유들로 우리는 이라크의 무조건적인 항복과 우리의 점령을 밀고 나갈 수 없습니다. 이란,시리아가 이라크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을 정도까지 이라크를 파괴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득이 되지 않습니다.’’

대사, 현명한 말이오. 이라크가 수니,시아, 쿠르드 정치 체제로 분열되도록 했다면 우리가 중동에서 원하는 안정에 도움이 안 되었을 것이다. 이런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미군을 주력으로 하는 다국적군이 2000만 인구를 가진 먼 나라를 제압하고 점령할 수 없었다. 나는 또 미국 국민이 그러한 것을 지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사담이 자기 국민에게 가져다 준 죽음과 파괴에 대한 벌로 자국민에 의해 물러나는 것을 보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대통령이 사담을 악마의 화신으로 비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그가 왜 권좌에 남아 있는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담이 만약에 실각하였다 하더라도 아마도 미국판 제퍼슨주의자가 후계자가 될 것이라든지, 사막의 민주주의 국가가 건설되어서 인민이 코란과 더불어 연방주의 신문[연방주의자 논집(The Federalist Papers)은 미국의 건국기에 작성된, 미국 헌법을 지지하는 85개 논문을 말한다] 을 읽게 될 것이라고 하는 생각은 너무 순진한 것이다. 아마 우리는 다른 이름을 가진 사담 같은 사람이 다시 나타나는 결과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참고-

헨리 키신저, 외교.

콜린 파월, 콜린 파월 자서전, 739-740



덧글

  • 계란소년 2015/08/01 08:10 # 답글

    "이라크가 수니,시아, 쿠르드 정치 체제로 분열되도록 했다면 우리가 중동에서 원하는 안정에 도움이 안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20년 뒤 정확히 이런 일이...
  • 파리13구 2015/08/01 08:52 #

    역사는 이상하게 반복됩니다. ㅠㅠ
  • 설봉 2015/08/01 12:23 # 답글

    아마 우리는 다른 이름을 가진 사담 같은 사람이 다시 나타나는 결과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 사담Mk2가 나타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습니다만, 그것도 아니라는 게 함정...;;
  • 엑스트라 2015/08/01 14:58 # 답글

    아들 부시가 해냈었던 바그다드 함락, 사담 후세인 체포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봐야할 일이군요...
  • 로리 2015/08/01 15:10 # 답글

    결국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일지도요
  • 나인테일 2015/08/01 19:10 # 답글

    이라크가 박살난 덕분에 중동 정세는 2차대전 이후 최악이 되어버렸죠.
  • 갈천 2015/08/01 20:30 # 답글

    파리19님은 키신저를 너무 높이 평가하시는 듯 합니다.
    그가 미국-중국외교를 정상화하면서 소련을 고립시켜 세계 세력구도를 변경시킨 것은 맞지만,
    박정희,티우가 내다본 베트남의 적화를 예상치 못한 점은 그의 우매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최근 중앙일보 김종필 회고록에도 나오지요.

    또하나 키신저는 미-중 수교의 공에 너무 도취하여 모택동, 주은래를 너무 신비화하고 있다는 평이 있지요.
    [....책을 절반 정도 읽었다는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민족 관리 라는 중국의 전통적 외교의 큰 맥락을 뛰어난 글 솜씨로 써내려 간 책”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이 책의 한계와 경계해야 할 점도 분명히 했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의 모든 행보를 고도의 전략·전술로 이상화한 경향이 있는 등 지나치게 친중국적 시각에서 쓴 책이다. 무엇보다 중국보다 더 힘이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쓴 책이다. ‘키신저의 책에 따르면’이라며 절대시하는 경향은 명백한 오류다. 이 책을 참고로 주변국이자 상대적 약소국인 우리의 대중관을 정립해야 한다.” ]

    우리나라 쪽에서 보면 그는 베트남의 패망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고(자신의 잘못을 반성한 점은 봐줄만하지만), 게다가 NLL을 국제법 위반이라는 황당한 소리를 해댔고...지가 뭔데...

    [키신저 "NLL은 국제법 위배" 미 국무부 "연평도 사격훈련은 적절" 2010.12.17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포함한 미국 관리들이 30여년 전 미국과 한국에 의해 설정된 서해안의 북방한계선(NLL)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지적을 했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17일 당시 국무장관이던 헨리 키신저는 1975년 미국 외교전문을 통해 "일방적으로 설정된 NLL은 확실히 국제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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