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시절 미국 국방부의 문고리 권력은? Le monde

소위 시절, 콜린 파월이 경험한 냉전은?


[미국]
[국방부]
[문고리 권력]

1977년 콜린 파월은 미국 국방부에서 존 캐스터의 보좌관으로 일하게 되었다.  

존 캐스터 John Kester는 국방장관과 차관의 특별 보좌관이었다.캐스터는 젊은 변호사로 해럴드 브라운 국방장관과 가까웠다. 나이도 콜린 파월보다 두 살이 더 어렸다.

콜린 파월에 따르면, 존 캐스터는 해럴드 브라운 국방장관과의 친분을 이용해서, 카터 시절 미국 국방부의 문고리 권력 역할을 했다. 캐스터를 거치지 않고는 서류가 장관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심지어 캐스터는 군의 인사문제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인사문제에서 캐스터의 힘은 육군 참모총장의 그것을 압도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존 캐스터는 자신의 문고리 권력을 어떻게 행사했을까? 

케스터는 배우였다. 나는 국방부의 모든 중요한 권력의 줄이 그의 손을 거친다는 것을 곧 발견했다.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물론 해럴드 브라운 장관이었다. 그러나 케스터가 너무나 주도면밀하게 처리를 하여서 어느 누구도 혹은 어떤 서류 한 장도 그를 먼저 거치지 않고는 브라운 장관에게 도착하지 않았다.

들어오는 서류용 상자와 나가는 서류용 상자가 있었지만 케스터의 경우에는 중간 단계용이 하나 더 있었다. 어느 날 나와 케스터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차관보가 결정을 내려 달라고 해럴드 브라운에게 제출해 놓은 서류 하나를 재빨리 훑어보았다. 그는 그 서류를 뒤에 있는 상자 안으로 집어 던졌다. 중간 단계용이었다. 며칠 후에 작성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려고 전화를 걸어왔지만 비서가 핑계를 대었다. 케스터 씨는 사무실에 없고 다른 전화를 받고 있고 장관과 회의 중이었다. 그 서류는 여전히 케스터의 서류 상자에 있었다. 잠시 어디에 두고 잊혀진 적도 있었다. 더 많은 날이 지난 후에야 케스터는 마침내 그 풀죽은 관리가 자신의 서류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만나는 것을 허락했다. 케스터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던 것이다 케스터가 보낸 적이 있는 아주 유능한 사람을 그 관리가 마침내 고용하였나? 그 관리는 변명을 중얼거리다가 마침내 눈치를 채고 미안해 했다. 그 일을 처리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당장 그 사람을 만나 보려 하였다. “현명한 짓이야.” 케스터가 말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질질 끌어가던 서류는 중간 단계 상자에서 나와서 장관실로 날아갔다. 벌 과 상을 하나씩 주고받는 것(가끔은 모두 차지하는 것),그것이 케스터의 방식이었다.

또한 다음 방식으로 케스터는 군 인사 문제에 개입했다.

직업 군인인 대령으로서 나는 3성,4성 장군들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었지만 존 케스터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문관 승진 인사를 장악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고위 군 인사 또한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고 있었다. 준장과 소장을 위한 진급 리스트는 더 이상 브라운 장관에 의해 형식적으로 서명되지 않았다. 케스터가 그 리스트를 세심하게 살펴보곤 했다. 케스터는 또한 각군 참모총장들이 장성들을 3성, 4성 장군으로 진급 추천하는 전통적인 권리를 바꾸어 놓았다. 이전의 관행은 참모총장들이 빈 자리에 단 하나의 이름을 천거하는 것이었다. “안 돼!” 케스터는 말했다. “이제는 국방 장관이 하나를 고를 수 있도록 두 명의 후보를 천거해야 돼!” 참모총장들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로저스 육군 참모총장이 한 장군에게 별 넷으로 진급시켜 전력사령부(FORSCOM)의 지휘권을 부여하겠다고 알려준 적이 있었다. 그러자 케스터가 간섭하며 말했다. “오, 안 됩니다. 두 명의 이름을 추천하세요.” 로저스는 그대로 했다. 이 진급 심사를 위해서 브라운 국방장관, 클리퍼드 알렉산더 (Clifford Alexander) 육군 장관. 케스터 셋이서 자기들이 편한 시간에 후보자들의 자질을 검토하였다. 이 심사에서 로저스 총장은 배제되었다.그리고 마침내 브라운 장관이 결정을 내렸는데 로저스의 결정과 달랐다.

결정 바로 후에, 내가 로저스의 사무실로 소환돼 샌드백으로 봉사해야 했다. “35년 군복무 중에 겪어 본 가장 나쁜 인사 경험이야,” 케스터에 대한 분을 터뜨리며 로저스는 말했다. “어떻게 해서 육군 선임 장군의 판단을 한낱 문관인 특별 보좌관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

그가 마침내 숨을 돌리기 위해 멈추었을 때,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장군님의 좌절감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케스터는 단지 그런 자리들이 브라운 장관에게 속한 것이고 그에게 결정권이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물론 로저스는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는 가라앉았다. 

케스터는 미국의 거대한 국방 조직 내의 사람, 서류,진급 등의 흐름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였다. 그의 방법은 자신만큼이나 직선적이었다. 착한 애들에게는 상을 주고, 말썽꾸러기 애들에게는 벌을 내렸다. 케스터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상관과 카터 행정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권력을 찾아서 행사하였던 것이다

출처-

콜린 파월, 콜린 파월 자서전, 339-344




덧글

  • 레이오트 2015/07/30 16:36 # 답글

    그래도 자신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상관과 당시 행정부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는 점만큼은 칭찬해줘야겠네요.
  • 파리13구 2015/07/30 16:40 #

    네, 제가 장관이라면 이런 보좌관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와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ㅠㅠ
  • 레이오트 2015/07/30 16:45 #

    전쟁을 장군들에게만 맡기기에 너무 큰 문제라고 하면서 문민통제의 중요성도 강조하는건 이해가 갑니다만 이게 전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보니...

    전투라는 일은 정치가나 관료가 개입하기에는 너무나도 섬세한 문제이죠.
  • 허안 2015/07/31 10:52 # 답글

    흠 무관인 콜린의 입장에서 본 시각이 조금은 반영되어 있지 않을까요? 뭐 조선시대 낙점은 아니더라도, 육해공 장관이 국방장관에게 단 하나의 명단을 올린다는 것은 문제로 보입니다. 당연히 결정은 국방장관의 몫이어야 하고 각군 장관은 복수의 후보자를 추천하고 각 후보자의 장단점과 추천사유를 상술하는 방식이 옳아 보이는데 말입니다. 당연히 군은 군과 전쟁능력을 위해서라도 문민통제가 좋다는 것이 제 소견이기도 합니다.
  • 파리13구 2015/07/31 11:02 #

    네, 군에 대한 문민통제에 대한 군인 콜린 파월의 선입견이 담긴 글이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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