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시절, 콜린 파월이 경험한 냉전은? Le monde

[냉전]
[독일]
[주독 미군]
[콜린 파월]

콜린 파월은 미국 뉴욕 사우스 브롱크스 출신이다. 그는 뉴욕 시립대학 재학 중에 학군단에 지원했다.

1958년 6월 소위 임관

독일주둔 미군 제3기갑사단에서 근무. 

근무지는 겔른하우젠이었다. 당시 소련 지역은 동쪽으로 43마일 지점에 있었다.

미 육군의 독일에서의 임무는 전체 방어 계획선인 GDP(General Defense Plan Line)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 선은,철의 장막이 가로지르는 포겔스베르크 산맥에 있는 풀다 협곡(Fulda Gap)을 가로질러 남북으로 나 있었다. 우리 사단 내의 모든 포와 기관단총, 소총, 박격포, 탱크 그리고 대전차 무기는 소련군이 그 협곡을 가로질러 오는 순간 저격하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 소대는 철의 장막 중 일부를 지켰다. 

소련군이 왜 밀려올까? 나는 몰랐다. 그 답은 내 계급(소위)을 넘어선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공격이 언제라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냉전은 혹독한 것이었다. 그 전해에 소련은 스푸트니크를 발사하여 우주 분야에서 도약을 이루고 있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대량 보복 정책을 채택했었는데 재래식 무기를 소량으로 유지한 채 핵무기의 힘을 늘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측 전략가들의 예상에 의하면 소련에 비해 재래식 무기가 열세이기 때문에 우리가 우세한 핵무기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파월 소위가 이 문제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 전부는, 우리들이 방어계획선 GDP을 따라 드문드문 배치되어 있는데, 소련군이 일단 침공을 시작하면, 우리는 있는 힘껏 싸우다가 물러나서 핵무기의 대홍수를 지켜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출처-

콜린 파월, 콜린 파월 자서전, 샘터, 2001, 103-104.




덧글

  • 계란소년 2015/07/29 16:33 # 답글

    지금은 러시아가 재래식 전력(=경제력, 인구)의 한계를 깨닫고 핵무장에 집중하는 걸 보면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 파리13구 2015/07/29 16:34 #

    그렇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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