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의 베트남전 개입은 뮌헨협정의 저주였나? Le monde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

[역사의 교훈]
[뮌헨협정]
[베트남전]

마거릿 맥밀런에 따르면, 1965년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 지상군 파병을 검토할때, 뮌헨협정이란 교훈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1965년에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에 지상군을 투입할지 말지 결정해야 했을 때 그의 행정부 내부에서는 유사 사례들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논의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연구원 유엔 풍 콩(Yuen Foong Khong)에 따르면,당시 강력한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데 뮌헨,한국 전쟁,1954년 프랑스의 베트남 전쟁 패배 등 모든 것이 동원됐다. 한편에는 로버트 맥나마라,딘 러스크(Dean Rusk) 국무장관, 그리고 뮌헨과 한국 전쟁의 사례로 볼 때 미국의 베트남 개입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동아태 차관보 윌리엄 번디(William Bundy)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번디가 말하는 교훈은 이러했다.

“어떤 종류의 공격이든 일찌감치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더 힘든 상황에서 맞서게 된다. 우리는〔뮌헨과 한국의 사례를 통해〕1930년대 만주,에티오피아,라인란트,체코슬로바키아에서의 교훈을 다시 배웠다”

또 그들은 전쟁이 확산되어 중국 국경과 너무 가까워지면 중국이 개입하리라는 것도 배웠는데, 이것 때문에 판단이 복잡해졌다. 그래서 결국 베트남에서의 미국의 대응은 다소 한정됐다. 반면에 한국 전쟁에서는 그런 제한이 없었다.

군대 파견에 반대한 가장 유명한 인물은 국무차관 조지 볼 (George Ball)이었다. 1965년 봄에 그는 미국이 50만 대군으로도 “전쟁에서 제대로 싸우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가 이용한 유사 사례는 프랑스의 베트남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프랑스의 디엔비엔푸 주둔군이 항복하면서 끝났다. 그는 이렇게 지적했다.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전쟁을 일으켜 완전히 패했다. 당시 프랑스는 7년 동안이나 혈전을 치러왔고, 전장에는 전투에 단련된 용사가 25만 명이나 있었으며, 남베트남군 20만 5천 명의 지원까지 받고 있었다.”

그는 많은 베트남인들의 눈에 미국인은 그저 프랑스를 대신한 식민지 지배자로 비칠 뿐이라고도 경고했다. 부시 대통령이 나중에 알제리와 이라크의 유사성을 거론한 것처럼 , 조지 볼의 반대자들은 미국인이 프랑스인과 다른 점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즉 프랑스는 베트남 전쟁을 치르는 내내 국론이 분열되어 정치 지도력이 약하고 불안했다. 하지만 미국 대중은 몇몇 성직자와 학자를 제외하곤 대체로 전쟁을 지지했다. 또 정부도 주둔과 승리에 대한 의지가 
뚜렷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식견 있는 베트남인들이 미국은 자기네 이기적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베트남의 독립을 수호하기 위해 베트남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결국에는 유사 사례 싸움에서 조지 볼이 지고 말았다. 남베트남 주재 미국 대사이던 헨리 캐벗 로지 (Henry Cabot Lodge)의 발언 이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우리가 개입하지 않으면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위험이 훨씬 더 커질 것 같습니다. 우리가 늑장을 부렸던 뮌헨과 비슷한 현 상황이 눈에 보이지 않으십니까?’


출처-

마거릿 맥밀런, 역사 사용설명서, 23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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