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아레테를 가르칠 수 있는가?" Le monde

투키디데스의 한마디...

[고대 그리스]
[교육철학]
[아레테]
[프로타고라스]
[소크라테스]

고대 그리스는 인간의 자질들 중 아레테(미덕,탁월함) 중시했다.

그리고 만약 서양교육철학이 탄생한 곳을 고대 그리스 아테네라고 주장하려 한다면, 

교육은 아레테와 연관된 개념으로 탄생했음을 알아야 한다. 즉 교육의 쟁점은 "아레테를 가르칠 수 있는가?"란 문제와 더불에 출현했다는 것이다.

호메로스 시절까지만 해도, 아레테는 유전,세습,상속의 문제였고, 왕,귀족의 전유물이었다면, 

프로타고라스는 “탁월함,즉 아레테는 배울 수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했고,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해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서양교육철학사 최초의 논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에릭 도즈의 설명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이 쟁점에 관해 소피스트 일세대, 특히 프로타고라스는 돌이켜보면 그가 지닌 낙관주의가 심히 슬플 정도이지만,역사적으로 총명한 견해를 지녔을 지도 모른다. “탁월함,즉 아레테는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전통을 비판하고 나아가 자신의 선조들이 만든 노모스를 근대화하여 그것에서 “야만적인 우둔함”을 최후의 흔적까지 쓸어 없앰으로써,인간은 새로운 삶의 기술을 획득하고 자신의 삶을 그때까지 꿈꾸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차원으로 고양시킬 수 있었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물질적 풍요가 낳은 급속한 성장과 그에 뒤이어 페리클레스 시대 아테네가 유일무이하게 성취한 것들에서 정점에 도달한 정신의 유례 없는 개화기를 목격한 이들이라면 이 희망이 이해될 법도 했다. 이 세대에게 황금시대는 헤시오도스가 믿은 대로의 희미한 과거
에 파묻힌 잃어버린 낙원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황금시대는 그들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앞에 있었고 하물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프로타고라스가 힘차게 외친 대로 문명사회에서는 가장 열등한 시민도 상상할 수
있는 어느 고귀한 미개인보다 훨씬 더 나은 자였다. 실제로 유럽의 50년은
중국이 걸어온 한 세기보다 낫다. 그러나 애통하게도 낙관주의자들의 역사는
짧은 길로 간다. 테니슨이 최근 유럽의 50년을 경험했더라면,상상컨대 그는
자신의 선호도를 재고했을지도 모른다. 또 프로타고라스도 죽기 전에 자신의
생각을 교정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진보는 거스를 수 없다는 믿음
이 영국에서보다는 아테네에서 훨씬 더 짧은 경로를 거쳐왔다.

상당히 초기 작품으로 보이는 한 대화편에서 플라톤은 인간의 본성에 대
한 프로타고라스의 이 견해를 소크라테스의 견해에 맞세워놓았다. 얼핏 보면
이 두 견해에는 공통점이 더 많다. 두 사람은 모두 전통적인 실용 언어를
사용한다. “좋은”이란 “개인에게 좋은”올 뜻하며,“이득이 되는”이나 “쓸모있는”
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전통적인 주지주의적 접근방식을
취한다. 그들은 그들이 살던 시대의 일상적 견해에 반대해서,어떤 이가 진실로 지신에게 좋은 것을 안다면 그는 자신이 아는 대로 행동할 것이라는 데에 합의한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다른 유보조항을 달고서 그들 각자의 주지주의를 규정한다. 프로타고라스의 경우에,아레테는 배울 수 있는 것이지만 지적 훈련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어린애가 자신의 모국어를 선택하듯이 우리는 “아레테를 선택한다.” 그것은 공공 교육에 의해서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학자들이 “사회적 통제”라고 부르는 것에 의해서 전수된다. 

반면 소크라테스의 경우에,아레테는 에피스테메(episteme),즉 학문적인 앎의 분야이거나 그것이어야만 한다.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심지어 앎의 적합한 방법이 미래의 고통이나 쾌락마저도 엇비슷하게 계산해낼 수 있는 둣이 말하도록 묘사되는데,나는 소크라테스가 가끔은 실제로도 그렇게 말했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그는 아레테가 도대체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인지 의심하는 것으로도 묘사되는데,이 점 역시 실제의 소크라테스가 했던 주장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에게 아레테는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는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습관을 통하여 획득되는 여러 행위 유형들의 집합이 아니라,확고한 통찰력에서부터 인간의 삶의 본성과 의미에로 솟아나는 정신의 한결같은 태도였다. 이와 같은 자기 일관됨에서 볼 때 아레테는 학문과 유사했다. 그러나 이러한 통찰력을 순전히 논리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전인적(全人的)인 것 을 가리킨다. 의심할 여지 없이 소크라테스는 “논변이 어디로 이끌든지 그 곳으로 따라가겠다는” 신념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논변이 너무 자주 새로운 문제들로 이끌 뿐임을 발견했고,논변이 더 이상 자신을 이끌지 못하는 곳에서는 기꺼이 다른 지침들을 따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꿈과 신탁 둘 다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며,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내면의 목소리(우리가 크세노폰을 신뢰한다면,소크라테스는 이를 “신의 목소리”라고만 불렀다)롤 듣고서 그것에 복종하곤 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참고-

에릭 도즈, 그리스인들과 비이성적인 것, pp.138-139


-교육이 아레테와 관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육의 아레테가 존재하는지도 의문이고, 

비록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모호하다는 것이

한국교육을 암울하게 만든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