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키디데스가 페리클레스를 높이 평가한 이유는? Le monde

투키디데스의 한마디...

<페리클레스- 아테네 지도자>


투키디데스는 전쟁기 아테네의 급진적 민주주의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에 따르면, 아테네의 전성기는 페리클레스의 치세 동안이었지만, 그가 전쟁 발발 2년 6개월만에 사망하면서 아테네가 내리막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투키디데스는 페리클레스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면서, 특히 그가 아테네 데모스(민중,인민)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그들을 지도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페리클레스 시기의 아테네 정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민주주의는 명목상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 "페리클레스 치세 동안 있었던 것은 명목상으로는 민주주의였지만, 그것은 사실상 지도자의 지배였다."

"지도자의 지배"라는 표현이 의미심장하다. 이는 민주주의의 고대 그리스어 표현인 데모크라티아, 즉 데모스의 지배와는 다른 개념이었다. 이렇게 투키디데스는 "지도자의 지배"와 "민중의 지배"를 대립시키며, 페리클레스가 민중의 지배가 아니라 지도자의 지배를 관철시켰다는 점에서 그를 높이 평가했다. 이런 맥락에서 투키디데스는 민주주의를 비판한 사상가들 중 한 명이었다고 평가 가능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관련 내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페리클레스의 리더십하에서 평화시의 아테네는 그의 온건한 정책 덕분에 안전의 보존을 보장받았고, 그의 지도하에 도시는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다 : 그리고 전쟁이 다가오자, 그가 전쟁 중인 아테네에 힘을 제공했던 것이 분명하다. 

페리클레스는 개전 후 2년 6개월 만에 사망했다. 그의 사후에 전쟁에 대한 그의 선경지명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는 아테네가 참을성을 유지해야 승리할 수 있고, 해군력 양성에 힘써야하고, 전쟁 동안 제국의 확장을 시도해서는 안되며, 도시를 위기에 빠트릴 수 있는 위험은 피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아테네인들은 이와는 정반대로 했다. 

그들은(페리클레스의 후배 정치인들) 전쟁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정책을 추구했고, 그 동기에는 개인적 야심과 사리사욕이 있었고, 이것 때문에 아테네 자신과 그 동맹국들이 피해를 받았다. 성공은 그것을 선창한 개인의 명예와 이익을 높였지만, 실패는 전체 도시에 영향을 주었고, 전력 war-effort 에 해를 주었다.

이러한 변화의 이유는 페리클레스와 대조되는 것이었다. 그의 힘은 그의 높은 명성과 뛰어난 지성에 기반했고, 그는 분명히 부패하지 않았다. 그는 자유 재량권을 가지고 인민 대중을 통제했고, 인민에게 끌려다니기 보다는 그들을 지도했다. 그는 인민이 듣기를 원하는 것을 그들에게 말함으로써 영향력을 유지하는 부도덕한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명성 덕분에 이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인민의 기분을 거스르는 말을 하면서 그들을 화나게 만들 준비를 하기도 했다. 가령, 그가 인민이 위험하게도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친다고 생각했을때, 그는 연설을 통해서 그들에게 충격을 주어서 평정심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반대로, 그는 인민이 비합리적인 공포로부터 자신감을 되찾도록 할 수 있었다. 

페리클레스 치세 동안 있었던 것은 명목상으로는 민주주의였지만, 그것은 사실상 지도자의 지배였다.  

참고-

투키디데스,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상권 ,196-198



덧글

  • 레이오트 2015/06/30 11:46 # 답글

    결국 인간은 이끌어주는 존재, 하다못해 하나로 모이고 나아가게 해주는 SYMBOL(상징)이 되는 무언가나 누군가가 필요한 법이지요.
  • 2015/06/30 12:11 # 삭제 답글

    균형이 깨지고 한쪽으로 폭주하면 강대국도 바로 멸망하는데,겨우 아테네 따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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