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 베트남전에 대해서,1969년 Le monde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

[인용]


1969년 1월 헨리 키신저는 미국의 포린 어페어스지에 <<베트남 협상>>이란 글을 기고했다. 

Kissinger, “THE VIET NAM NEGOTIATIONS,” Foreign Affairs 47 ( January 1969)

이 글에서 키신저는 미군의 철수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음을 인정했다.

키신저는 미군 대신에 남베트남군의 강화 방안을 지지했다. 이는 이후에 전쟁의 베트남화 “Vietnamization”로 개념화될 것이었다. 

그는 또한 북베트남 정부 그리고 그들의 동맹인 남베트남 해방전선(베트공)과의 협상을 지지했고, 이는 미군 철수를 순조롭게 만들고, 다른 지역에서의 미국 세력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 였다 : "우리가 베트남에 개입한 이상, 우리의 행동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지 간에, 전쟁을 명예롭게 끝내는 것이 세계 평화를 위해 중요하다. 이것 이외의 다른 대안은 국제질서 전망을 복잡하게 만들 힘의 태동으로 귀결될 것이다."

만약 정치인들이 동남아시아의 사건을 통해서 미국의 명성과 결의에 상처를 주게 만든다면, 이후 등장할 다극화된 세계에서 세계는 자신의 관리자,미국을 잃게 될 것이란 경고였다. 

결국 관리자 미국없는 세상은 혼란 상태가 될 것이란 주장이었다. 따라서 키신저는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막겠다고 결심했다.



- 키신저가 주장한 명예로운 철수론은

야구로 비유하자면,

10:0 으로 지는 경기에서 지는 팀이 9회에 한,두점이라도 내는 것이 다음 경기를 위한 사기,분위기 조성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원리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소련과 페넌트레이스라는 장기전을 하는 팀이기 때문에,

이미 망한 한 경기에 모든 팀의 능력을 소모해서는 안되고,

지는 게임을 멋지게 마무리해서, 다음 게임을 위한 유리한 조건을 만드는 것이 

페넌트레이스에 임하는 야구팀 미국을 위한 좋은 방안이라는 주장이었다.

봉쇄정책의 미국은 소련과의 페넌트레이스를 마치 코리안시리즈 치르듯 임했다는 점에서 

팀의 운영에 문제가 있었다는 키신저의 평가가 아니었을까? 

특히 대량보복 전술은 미국이 소련과의 모든 경기에서 벌떼마운드를 운영,

소련과의 경기는 무조건 잡겠다는 무리수였다는 것이 문제로 제기될 수 있었다. 

그 논리적 결론은 바로 데탕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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