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 아데나워와 비스마르크에 대해서... Le monde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



키신저는 아데나워를 "비스마르크 이래로 가장 위대한 독일 정치인"이라고 규정했다. 이 두명의 위대한 독일 지도자들을 해박하게 고찰하면서 그는 두 사람이 다음의 공통의 자질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 극단들에 치우치지 않고 중재할 수 있는 능력, 사회에 자신들의 의지의 확고함을 각인시키는 것, 서양 문명이라는 더 원대한 비전을 위해서 즉각적인 압력을 초월하는 것.

키신저에 따르면, 특히 마지막 특징은 종교적 헌신의 산물이었다 : "신께서 인간적인 기준의 덧없음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 주셨다."

두 사람의 의지의 힘은 분석 보다는 신앙의 산물이었다. 그들 각자는 자신의 조국의 격동기라는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의 시대의 흐름을 알아내는 특이한 직감 intuition을 소유했다.  


출처-

Kissinger,Diplomacy,502-503; idem, "The white revolutionary,"898


-키신저가 위대한 정치인으로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에는 비스마르크,아데나워 뿐만아니라, 샤를 드골,모택동 등이 있었다.

정치인을 위한 자질로 키신저는 직감 intuition을 강조했다. 직감은 현실,경험을 초월해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비전이었다. 

비스마르크,아데나워,드골,모택동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의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제시했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헨리 키신저의 데탕트도 직감의 산물이었다고 생각한다. 



덧글

  • 잠꾸러기 2015/05/17 13:43 # 답글

    조선이 성리학에 올인해서 결국 망했지만 500년이나 지속될수 있었던 원동력중에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경연제도 같은 집단 토론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토론을 싫어한 왕도 있었고 신하들과 배틀을 즐겼던 왕도 있었죠. 경연에 관한 기록을 보면 요즘 국무회의보다 더 나은 부분도 엿보입니다.
    지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통찰력의 본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데 이 통찰력을 키우는 방법은 그저 평소에 공부하고 토론을 즐기고 귀를 열어두는데 있다고 봅니다.
    조선이 망한 이유중엔 이런 제도가 세도정치기를 통해 사장되어 버린 탓이 있습니다.
  • 파리13구 2015/05/17 13:45 #

    경연과 국무회의를 비교하면

    재미있는 연구가 나올 듯 합니다. ㅎㅎ

    특히 경연이 더 나은 부분이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요...
  • 잠꾸러기 2015/05/17 13:49 #

    영조시대 경연을 번역하고 있다던데 왠지 꽤 많은 부분에서 요즘보다 나을것 같은....-_-
    청계천 준설, 수성윤음으로 국방체계 개혁, 균역법으로 병역문제 개선...등등 비교할 부분이 많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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