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리 엡도, 프랑스의 내전인가? La culture francaise

샤를리 엡도 테러, 용의자 1명 체포...


[샤를리 엡도]
[프랑스]

영국 스파이크드 보도

프랑크 퓨레디 Frank Furedi

2015년 1월 8일

이번 프랑스의 샤를리 엡도 테러에 대해서, 유럽 외부로부터의 종교적 음모탓이란 지적이 많다. 음모 장소로 예멘, 시리아, 심지어 파키스탄도 회자된다. 혹자는 알카에다가 문제라 하고, 다른 혹자는 이슬람국가 탓이라 한다. 테러범들을 훈련시킨 것이 바로 그들이라는 것이다. 즉 위협은 외부로부터 온 것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진정한 위협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다. 테러범들은 완벽한 불어를 구사했다. 그들은 파리의 거리에 대해 친숙했다. 그들이 일정시간을 중동에서 보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프랑스 사회의 산물이고, 그들이 죽인 것도 프랑스 사람들이다.

<조용한 문화전쟁>

다른 서양 국가들처럼, 프랑스는 수백만의 자국 시민들이 자국의 문화로부터 소외를 느낀다는 점을 대중적으로 인정하기를 꺼린다. 몇몇 경우에서 이 소외가 그들의 모국에 대한 경멸과 증오로 표출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유럽 지도자들은 왜 수많은 청년들이 사회로부터 소외를 느끼는지의 문제에 대해 언급을 기피하고 꺼린다.

이같은 소외현상에 대한 유럽 사회의 공식반응은 "이에 대해 말하지 말자!"는 것이다. 유럽 관리들은 이같은 문화적 위협에 대한 공개적 토론이 급진파 이슬람주의자와 극우파 인종주의자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 본다. 이런 맥락에서, 2014년의 한 조사결과는 거의 인용되지 않는다. 영국의 ICM 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16%가 이슬람국가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하며, 특히 18-24세의 청년들의 긍정 평가는 27%에 달한다.

물론 여론조사가 부정확할 수도 있고, 시간에 따라 변할수도 있다. 하지만, 프랑스 청년 무슬림들과 잠시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들이 프랑스의 삶의 양식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점을 바로 알수 있다. 이 소외가 프랑스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프랑스 당국자들은 이같은 적대감 증대를 이슬람 테러조직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문제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유럽 무슬림의 서양에 대한 적대감은 이들 청년의 사회화에 대한 실패의 산물이다.

왜 유럽사회가 이들 청년들을 사회화시키는데 실패하는 것일까? 이는 유럽사회가 자신의 지적,도덕적 유산에 대한 확신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왜 학교가 무슬림 학생들에게 계몽주의적 가치를 교육시키는데 실패하는 것일까? 1990년대에 프랑스 역사가 조르주 브노상 Georges Benoussan 은 다음을 지적했다. 교사들이 학교에서 홀로코스트를 가르치면서 학생들과 말싸움을 벌인다. 그에 따르면, 학생들이 선생을 제지하며 "이는 거짓이다!"라고 외친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아우슈비츠와 트레블린카 이야기를 꺼내면, 학생들이 야유를 보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프랑스의 어린 학생들이 과거 역사에 대한 프랑스 국가의 공식 해석에 대한 반기를 들고 있고, 이는 프랑스가 내부로부터 분열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 문제에 직면하기 보다는, 프랑스 당국은 이를 회피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더 많은 프랑스 청소년들이 아우슈비츠 강의에 대해 야유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영국 학교의 상황도 유사하다. 2001년 브래드포드 인종폭동 직후에 공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브래드포드의 교사들이 홀로코스트를 무슬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역사협회의 <<감정적이고 논쟁적인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 Teaching Emotive and Controversial History>> 이란 보고서는 잉글랜드 북부 도시들의 역사수업에서 홀로코스트 강의를 회피하고 있고, 이는 반-유대주의 정서와 무슬림 학생들의 홀로코스트 부정 Holocaust denial  때문이라 한다. 또한 어떤 역사수업에서는 십자군 전쟁을 교육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주제에 대한 균형있는 교육이 지역 이슬람사원에서 교육되는 내용과 정면 배치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상의 보고서들은 몇몇 학교들이 무슬림 학생들의 문화적이고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극복하는데 도전하기를 꺼린다는 점을 보여준다. 심지어 갈등 때문에 십자군 전쟁 교육마저도 포기할 정도라니, 유럽 학교에서의 방이적 도적과 지적 분위기가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만약 홀로코스트에 대한 토론이 기피대상이라면 다른 역사 주제에 대한 토론은 어떨까? 이들 보고서는 세속 학교들이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상실했음을 보여준다. 사회를 위협하는 사상 논쟁에 학교가 개입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다.

<침묵>

이러한 문화적 적대에 대한 공식적 침묵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안다. 그리고 문화적으로 분열된 사회에서의 토론 부재 상황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할말을 잃고 있다. 또한 자주 급진적 지하드주의에 대한 대응은 묵시록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최근에 미셸 우엘벡이 출간한 <<굴종 Submission>>은 가까운 장래에 프랑스에서 이슬람 정권이 출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참고- 소설의 배경은 2022년 프랑스 대선이다. 1차 투표에서 양대 정당인 집권 사회당과 대중운동연합(UMP)이 패배하고 대신 극우성향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과 가상 정당인 ‘이슬람형제단’ 무함마드 벤 아베스가 결선투표에 진출한다. “극우정권이 출범해선 안 된다”는 위기감에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아베스에게 몰표를 던지면서 프랑스 사상 초유의 이슬람 정권이 탄생한다.]

독일에서도, 페기다(PEGIDA), 즉 유럽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을 중심으로 반-이슬람주의 운동이 극성이다. 페기다의 주장, 즉 독일과 서양의 미래가 이슬람이란 주장이 독일 대중을 주목을 받는다. 이슬람화된 유럽에 대한 공포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이다. 페기다의 지도자인 루츠 바흐만 Lutz Bachmann 은 심지어 유럽의 휴머니즘과 계몽주의 전통을 보호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참고- 루츠 바흐만은 1990년에 16회의 절도 범죄로 인해 3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는 또한 마약 거래로도 유죄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다]

페기다는 이슬람 문제에 대한 유럽의 침묵의 산물이다. 토론의 부재가 급진 이슬람의 위협에 대한 극우파 운동에 대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적 양극화>

유럽의 이슬람화 주장은 다문화주의 수사 만큼이나 회피적이다. 유럽이 직면한 진정한 위협은 외부 테러세력 혹은 이슬람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때문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유럽 지도자들이 유럽의 전통적 역사적 유산의 현재적 가치에 대한 확신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유럽의 다문화주의 포용은 다양한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 주된 수용 배경은 유럽이 자신의 삶의 양식과 가치에 대한 확신을 제공하는데 무능했기 때문이다. 다문화를 수용하면서, 유럽 정부들은 공동체생활을 위한 공동의 지적 기초를 제공하는 어려운 임무를 피해도 되었다. 

다문화주의는 일종의 정치적 회피이다. 또한 이는 파괴적인 문화적 격리를 조장한다. 이같은 게토화는 대화가 이제 서로 격리된 공동체 내부에서만 진행됨을 의미한다. 놀랄 것도 없이, 게토화된 공동체에서 자라난 청년들은 국가의 공식적 가치을 접할 기회를 점점 잃게되고, 자신만의 견해를 가지게 되고, 다른 공동체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된다. 현재 프랑스의 많은 청년 무슬림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 체계는 다른 프랑스 사회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이같은 무슬림과 나머지 공동체간의 가치 괴리현상은 미디어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다문화적인 분열을 극복할 수 있는 대화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많은 유럽 청년들을 이슬람국가 전사로 만드는 정서는 유럽이 내부에서 조장한 것이다. 많은 유럽 무슬림들이 이슬람국가에 대해 동정적이며, 심지어 이 동정여론이 중동의 그것보다 더 높은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이는 그들의 반-서양주의 정서의 뿌리가 유럽 외부가 아닌 유럽 내부에 있음을 의미한다.

파리의 샤를리 엡도 테로로 귀결된 일련의 사건들은 파리의 교외빈민가 학교교실의 토론에서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몇몇 무슬림 학생들이 홀로코스트가 신화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교사들은 방어적이었고, 교육 의무를 방기했다. 이 때문에 그것이 신화에 불과하다는 무슬림 학생들의 편견은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었다. 학창시절 동안, 프랑스 무슬림 학생들이 느끼는 주류사회로부터의 소외감은 더욱 강화된다. 그리고 이 소외감이 이슬람 급진주의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소외가 사회에 대한 불만 및 혐오가 되고, 그것이 폭력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유럽이 각성하지 않으면, 유럽의 미래는 필연적으로 암울할 수 밖에 없다.    



덧글

  • 레이오트 2015/01/19 14:41 # 답글

    흥미로운 사실은 독일은 예전부터 터키 이민자 2세들에 의한 각종 범죄로 고민이라는 것이지요. 그래도 이들이 나은것이 터키 이민자 2세들은 독일 사회에서 독일의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는 사실이죠. 즉, 이들이 저지르는 범죄들은 사회 부적응으로 인한 문제이지 결코 이데올로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사실 이들은 재일교포들과 비슷한 입장, 즉 출신 국가와 거주 국가 양 쪽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유럽에서 홀로코스트를 부정한다는 것은 히틀러와 나치당을 지지한다는 것과 거의 유사한 것인데요, 과연 프랑스는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요?
  • 파리13구 2015/01/19 14:47 #

    네, 우려되는 상황이고,

    여전히 프랑스는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고 봅니다. ㅠㅠ
  • Megane 2015/01/19 15:52 # 답글

    [역사적 진실은 이렇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교육은 이렇게 핑계할 수 없습니다. 불필요한 침묵으로 낳은 불행한 현실에 대해 다음세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이같은 비극이 또 없겠습니다. 일본은 충분히 더 강력한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역사의식의 부재로 인해 중국(물론 중국의 영향력이 더 크지만)과 우리나라에 발목을 잡힌 걸 생각하면 더더욱 현실을 부정해서는 안 될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이젠 미국이 일본의 멱살을 잡...(응?)
  • 페리원 2015/01/20 08:13 #

    일본이 80년대 보다 더 강력해질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역사 의식이고 자시고 에초에 일본이 가질수 있는 최대 지위가 딱 80년대 지위 에초에 자원이 풍부하지도 않고 농수산물이 자급자족도 힘들고 심심하면 지진같은 큰 사고가나는 국가인데 선진국은되도 초강대국은 에초에 힘든구조 사실 역사의식이 가장 없는 국가가 중국인데 경제 정치 군사 2위국가로 우뚝섯죠.
  • 메이즈 2015/01/19 15:58 # 답글

    개인적으로는 단일민족국가에 명백한 이질분자가 들어오고, 그걸 사회가 늦게나마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터져 나왔다고 봅니다. 워낙 장기간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 왔기에 이전까지 그 존재를 주류 사회에서 잘 모르다가 숫자가 엄청나게 불어난 데다 동화가 거의 안 된 것까지 확인되면서 뒤늦게 자기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가를 깨닫고 난리를 치는 것이죠,

    P.S 사실 이민자들의 융화 실패는 유럽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어느 정도 발전이 궤도에 오른 나라는 어디나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 풍신 2015/01/19 16:21 # 답글

    역설적으로 말하면 프랑스 내의 이슬람 계열 학생들은 유럽의 학문의 관점을 이슬람의 교육을 받아 머리가 굳어진 상태에서 거절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요전에 프랑스 교사들이 무슬림 학생 가르치는데 고생을 해서, 아얘 무슬림 쪽 선생 한명 동행 시켜서 이슬람 가르침과 모순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옆에서 말해준다던가 하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역사를 보는 유럽식 관점을 이슬람 가르침 때문에 거절한다면, 같은 나라에 살아도 문화적 벽은 높아갈 뿐이고, 학력의 의미에서도 프랑스 교육 관점을 우선할테니, 상대적으로 이슬람계는 학력이 떨어지겠네요.

    어떤 의미에선 로마에선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것의 확장형태로, 로마의 지식을 부정한 시점에서 보편적 상식에서 멀리 떨어지니, 사회적으로 소외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해결법은 없겠죠. 이슬람계가 이슬람의 관점에서 프랑스 식 문화와 학문을 거절하는 시점에서...

    브라질은 꽤나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살지만, 그 자제들이 교육 문제나 문화 문제로 심각한 충돌이 일어나거나 하는 일을 거의 못 봤습니다. (물론 무슬림 출신도 본 적 없지만요.) 개인적인 관점에선 무슬림과 힌두 계열의 종특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호주에선 고작 영어 학원에서도 문화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죠.)
  • 파리13구 2015/01/19 16:25 #

    문화상대주의 때문이 유럽이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상실했고,

    이것이 가치의 무정부 상태로 귀결되어

    무슬림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해오는 것이란 분석입니다.

    문화적 상대주의, 문화적다원주의가 위기의 사상적 뿌리란 주장입니다.
  • 2015/01/19 19:1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아이지스 2015/01/19 16:25 # 답글

    꼭 무슬림만 저런 문제가 터져나온단 말이죠
  • KittyHawk 2015/01/19 19:26 # 답글

    한국에서도 파키스탄인 관련 문제가 불거질 때 드러난 것으로 아는데 유독 유럽의 무슬림들이 현지 문화나 교육을 받기를 종교적 가치를 이유로 거부하고 교육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결과 제대로 된 직업을 얻지 못해 범죄 예비군이 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는 의견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기네 문화권에선 자신들의 방식을 따르라면서 정작 타 문화권에선 자기들 방식을 고집하겠다는 행동 양태를 보이니 아연실색일 따름입니다.
  • 2015/01/19 20: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asdf 2015/01/19 20:36 # 삭제 답글

    어째 문화가 다르기는 해도 미국의 흑인문제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 착각인지...
  • 까진 핵펭귄 여뫙 2015/01/19 20:37 # 답글

    이런 이데올로기 대결구도의 원인이 문화 상대주의라고 하는 건 너무 안일한 주장 아닌가요? 문화상대주의의 본질이란 타 문화를 존중한다는거지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는 것하고는 또 다릅니다만.(심지어 이슬람주의와도 같이 타 문화를 극단적으로 배척하는 문화에 대해서는 절대 포용하지 말라고 하는 내용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명백한 '확신'을 가지고 있죠.)

    이건 상대주의적 가치가 스스로에 대한 확신 상실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부분의 무능에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상대주의라는 게 그런 극단적인 자문화 우월주의에 대항하던 가치인데, 그런 질서 자체를 거부하는 사상들마저 포용하는 자기파괴적인 모순을 겪을 정도로 어리석었다면 과연 애초에 그런 것들의 대안으로 논의될 수나 있었을까요?
  • ㅁㅇㄹㄴ 2015/01/19 22:24 # 삭제 답글

    나 옛날에 '프랑스에도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라는 헛소리를 KBS에서 본적이 있음. 그때 자료영상을 보니 k-pop을 즐기던 사람들 70%정도가 흑인이더라. 프랑스는 주류문화즐기는 사람 따로 소수문화즐기는 사람 따로임
  • 2015/01/19 23:2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얼음집주민 2015/01/20 10:32 # 답글

    [프랑스는 수백만의 자국 시민들이 자국의 문화로부터 소외를 느낀다는 점을 대중적으로 인정하기를 꺼린다]
    프랑스 국적 무슬림이 백만 단위씩이나 된단 말인가요
    프랑스도 참 답이 없군요

  • KittyHawk 2015/01/20 19:35 #

    최대치로 잡으면 600만명대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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