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의 지적 기원은 포르노인가?" Le monde

디지털 혁명과 암기식 교육의 종말?

책의 역사에서 독서의 역사로...


육영수에 따르면, 책의 역사가 독서의 역사로 보완된 지적 맥락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특정한 책의 출판,배급과 그 책을 소화하고 그 책에 반응하는 독자의 특정 태도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가령,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읽고 감동한 독자가 프랑스 혁명의 시발점이 된 바스티유 감옥 습격에 반드시 동참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을 출간,소지 했다는 이유로 해당 출판사나 개인을 역사적 유물론의 신봉자나 과학적 공산주의자로 단정할 수는 없다.

책의 역사가 무엇을 읽었는가를 강조한다면, 독서의 역사는 그 책을 어떻게 읽었는가가 문제가 된다. 즉 독서의 역사는 책을 매개로 한 저자와 독자 사이의 미묘하고 복잡한 대화,교류,충돌에 주목한다.

로버트 단턴에 따르면, 책과 프랑스혁명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하지만, 프랑스혁명의 주인공이 된 책의 저자들은 루소,볼테르,달랑베르 같은 위대한 계몽주의 철학자가 아니라, 시궁창의 루소주의자들, 문단의 프롤레타리아트, 문화의 부랑아라는 경멸적인 명칭으로 불리던 삼류 작가들이라는 것이 단턴의 주장이다.

이른바 단턴 테제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 발발 이전의 프랑스인들은 어렵고 형이상학적인 고급 계몽주의 철학 서적을 이해하느라 골머리를 앓는 대신에 , 지배 계층의 성적 무능력과 도덕적 이중성을 야유한 저급한 계몽주의 서적을 코를 박고 읽었다. 금서 작가들은 삼류 통속소설, 정치적 비방 중상문, 포르노그라피 등의 다양한 표현을 통해서 권력자의 아랫도리를 공격함으로써 구체제의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에 간접적으로 도전했다는 것이다.


출처-

육영수, 책과 독서의 문화사 활자 인간의 탄생과 근대의 재발견, 책세상, 2010, 39-47




참고로, 단턴은 책과 혁명에서 다음을 강조했다.


“18세기 프랑스인들은 어떤 책을 읽었을까?”
 
오래 전, 다니엘 모르네가 맨 처음으로 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 문제를 프랑스 혁명의 지적 기원이라는 드넓은 영역에 발을 들여 놓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았다.
 
모르네는 앙시앵 레짐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읽었는지 밝혀 내면서 그들이 체험한 문학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는 총 2만권이나 되는 책들을 세면서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18세기 개인 장서의 경매 목록에서 그 자료를 모았다. 그는 자료 색인카드를 산더미처럼 모은 뒤,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조사했다. 그 답은 한 권이었다. 2만권 가운데 한 권이라니!!!
 
모르네의 연구에 따르면, 18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치논문이자 프랑스 혁명의 성서라 할 수 있는 이 루소의 책을 1789년까지는 거의 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계몽주의 와 프랑스 혁명을 연결하는 고리가 끊어진 것처럼 보였다. 프랑스인들은 인민주권 과 일반의지를 생각하는 대신, 마담 리코보니 의 감상적인 소설이나 테미죌 드 생티야생트의 모험담에 더욱 흥미를 느낀 것처럼 보였다.
 
당시까지 한 프랑스 속담은, 프랑스 혁명, “그것은 볼테르의 잘못이라네, 그것은 루소의 잘못”이라 지적하면서, 계몽사상가의 저작이 프랑스 혁명과 직접 연결되었다는 관념을 반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르네의 연구는, 프랑스 혁명은 루소의 잘못도, 볼테르의 잘못도 아닌 것이었다.
 
지금 모르네의 연구는 많은 비판을 받지만, 그의 선구적 연구가 프랑스 혁명의 지적 기원이라는 주제의 입구를 개방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출처 – 로버트 단턴, <책과 혁명>



덧글

  • 레이오트 2015/01/02 13:38 # 답글

    어떤 점에서는 이게 맞는지도 모르죠. 어차피 기존 지배층들은 소위 어리석은 자들의 지배논리대로 세상이 움직이기를 강요당하게 만드는게 특기이니까요.

    실제로 조선시대, 특히 19세기 세도정치기에는 풍자문학뿐만 아니라 춘화와 남녀상열지사로 대표되는 포르노가 제대로 폭발했다고 합니다.
  • 파리13구 2015/01/02 14:03 #

    프랑스 혁명의 특징은 그 어리석은 자들이 체제 순응논리로 투항하는 것을 거부하고,

    혁명에 가담했다는 점에 있고,

    그들에게 영향을 준 것이 루소라기 보다는, 찌라시 혹은 포르노 같은 저급한 글이었다는 것이

    단턴의 지적입니다.
  • 레이오트 2015/01/02 14:10 #

    그리고 그 어리석은 자들을 단두대로 보냄으로써 그들이 재집권할 여지를 최대한 줄였지요.

    참고로 휴 잭맨과 러셀 크로의 명연기로 유명해진 뮤지컬영화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격동의 프랑스를 대중에게 알려주면서 대한민국 시민운동의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 Megane 2015/01/03 09:07 # 답글

    지금보기엔 선동가들의 웅변과 저급한 글이었겠지만, 그 당시엔 민중들 나름대로 배설구같은 역할을 해내기엔 충분했던 거 같습니다. 게다가 쌓이고 쌓인 불만들을 표출시키기엔 더없이 좋은 이유이기도 했겠지요.
    작년을 뜨겁게 달궜던 종북논란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역시 비슷한 테제들이 있었을 거라고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다만, 해당인사들이 너무 드러내놓고 선비질을 한 것들이 그런 음모론이나 싸구려 주장들을 가릴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으니 상쇄될 수도 없었겠습니다만...
    그리고 현실적 충동들 역시도 시민혁명의 주 요인이었던 걸 감안하면 뭔가 움직일 대의 명분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저급해도 유용했었을 겁니다.
    본문을 읽고 생각해보니, 시대는 바뀌어도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잠본이 2015/01/04 12:43 # 답글

    국내에서 수년전에 마리 앙투아네트를 공격하는 야설의 출판상황과 혁명에 연결되는 역사적 배경을 아아주 진지하게 다룬 연구서가 나온 적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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