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역사가 있을까? Le monde

비르투 virtu


[운명]
[결정론][자유의지]

운명은 결정된 것인가 아니면 운명은 인간의 개척대상인가?

운명에 역사가 있는가?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운명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변해왔을까? 

만일 우리가 위대함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에 실패한다면 그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보면, 카시우스가 브루투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잘못은 "우리의 별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다."

위대하지 못한 인간의 잘못을 점성술 처럼 태어날 당시의 별의 위치에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운명론에도 역사는 있다.

운명은 결정되었는가 아니면 인간은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가?

특히 전자와 관련되어, 운명결정론을 설파한 책이 바로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이다. 

보에티우스 이전의 운명에 대한 로마인 고전적 해석은 인간이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운명개척론 분위기에서, 보에티우스는 운명을 다르게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운명의 여신은 "눈먼 힘"으로 자신의 선물을 완전히 무심하게 무차별적으로 나눠준다. 여신은 잠재적인 친구가 아니라 단지 무자비한 힘이다. 운명의 여신의 상징은 조수의 밀물과 썰물 처럼 멈출 수 없이 돌아가는 변화의 수레바퀴다.

기독교 승리 이후의 중세적 운명결정론은 여신은 은혜를 베풀 때 인간의 장점에 매우 무관심하고 부주의함으로써, 운명의 재화가 전혀 추구할 가치가 없다고 가르쳤다. 세속적 명예와 영광에 대한 욕망은 실로 완전히 무의미한 것이었다. 

보에티우스에 따르면, 운명은, 운명의 여신의 변덕스러운 전횡에도 불구하고, 신의 자비로운 섭리를 따르는, 신의 보조자다. 왜냐하면, "행복이 지상의 유한한 삶에서 나타나는 우연적인 것들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로 하여금 모든 세속적인 일을 경멸하고 속세에서 해방되어 천상의 환희 속에서 크게 기뻐하도록 하는 것이 신의 계획의 일부이다. 

보에티우스는 바로 이러한 이유로 신이 이 세상의 재화에 대한 통제권을 무책임한 운명의 손에 맡겼다는 것이다. 즉 신의 목표는 충족함은 부를 통해 얻을 수 없고, 권력을 왕위를 통해 얻을 수 없고, 존경은 지위를 통해 얻을 수 없고, 명성은 영광을 통해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운명은 신의 섭리란 명제는 단테와 페트라르카에게 영향을 주었다.

운명은 신의 섭리이고, 운명은 신의 보조자라는 중세적 해석이 도전받은 것은 바로 르네상스 시대때 였다.   

덧글

  • Megane 2014/12/19 01:26 # 답글

    솔직히 저는 개인적으로 운명이란 걸 믿지는 않습니다.
    과거는 이미 나타난 결과고, 미래는 알 수 없으며, 단지 인간이라는 존재가 건방지게 규정해 놓은 시간이라는 함정에서 자기들 스스로 분석하고, 규정하는 그런 건 운명이 아니라 역사인 거죠.
    인류가 역사라는 걸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로 누적되어 온 자취를 더듬는 것으로 현재를 보충하는 것으로 미래를 쌓아간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작위와 필연이란 걸 구분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쌓여있어야 할 진실과 주관적인 인식을 분리해내지 못한 결과물로서의 자료를 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감정과 이성을 구분해내기 힘든것처럼 말이죠.
    그냥, 제 생각을 끄적여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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