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덕분에 그리스가 페르시아에 승리했을까?" Le monde

[고대 아테네]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

[고대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
[그리스][페르시아]
[자유]



그것은 자유의 힘 덕분이었는가? 참주로부터의 자유가 그리스 군사력의 원동력이었나?


당대의 그리스의 한 의사는 다음을 주장했다고 한다.


아시아인들, 즉 페르시아인들의 약점은... 그들의 정치,사회적 조직 (노모이 nomoi)에서 기인했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왕정 형태여서 사람들이 스스로 주인이 아니며, 스스로 다스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참주정하에서 살아가기에 전쟁을 위한 훈련을 할 이유가 없고, 아울러 전쟁을 할 이유 역시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들에게 닥칠 위험과 자신들의 주인에게 닥칠 위험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주들이 통치하는 경우, 전쟁을 준비하는 자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주인을 위해서 전쟁에 나가고 고난을 견뎌내며 자식과 아내로부터 멀리 떨어져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하도록 종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이 고귀하고 용맹스런 행동을 하더라도 그들의 이런 행동은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참주의 이익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일 뿐이며, 이를 위해 그들은 위험과 죽음을 감내해야 한다. 게다가 그들의 정신은 훈련 부족과 나태로 인해 나약해지기 마련이라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비록 누군가 늠름하고 용맹한 천성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정치 조직의 형태에 따라 그의 마음이 변하거나 나약해지기 때문이다. 아시아 지역에 거주하지만 그곳 참주들의 지배를 받지 않는 모든 그리스인과 외국인의 경우가 그 좋은 증거이다. 자주적인 그들은 스스로를 위해 고난을 견디며, 무엇보다 전시가 되면 무척이나 용맹하다. 그들은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며, 자신들에게 상을 내리고 비겁한 자들에게 벌을 내린다.


출처-

폴 우드러프, 최초의 민주주의, 127-128에서 재인용...



- 참주정으로부터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와 참주정 국가가 싸울때 위의 원리를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가?

가령, 이라크 해방전쟁에서, 참주정으로부터의 자유가 보장된 미군과 후세인 독재치하의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간의 전쟁에서도 

이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가능할까? ^^


하지만 그리스 = 서양 = 자유, 페르시아 = 동양 = 야만인 이라는 도식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가령, 유달승 교수의 자유와 인권 중시한 ‘페르시아 제국’같은 기사가 대표적이다. [한겨레, 2009년 4월 23일] [기사 링크]

이 기사에 따르면,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대왕은 백성들이 원하지 않으면 통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개인의 종교와 신앙을 강압적으로 개종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를 보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유와 인권을 위한 키루스 대왕의 선언과 약속이 이후의 페르시아 제국 통치자에게도 하나의 원칙이었는지, 그리고 이 원칙이 관련 법을 통해서 보장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역사적으로 볼때, 만약 페르시아 제국에서 자유와 인권이 법에 의해 보장되었다면, 

페르시아 전쟁은 지중해를 둘러싼 두개의 자유민간의 전쟁 즉,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간의 패권 전쟁이라 평가할 수 있을까?



덧글

  • 레이오트 2014/11/17 18:05 # 답글

    근본적으로 그리스 연합군의 우수한 병력과 무기, 그리고 전쟁수행의지 덕분에 승리한거죠.
    당시 그리스 중장보병은 청동이나 철제 무기와 갑주를 사용했지만 페르시아군은 석기, 목제, 금속제 무기를 썼으며 방어구는 화살과 같은 투사무기에는 강하나 도검류에는 엄청 약했거든요.
    그리고 다른 도시국가들은 흙과 물을 내놓으라는 페르시아 사절단의 요구가 가진 뜻을 완벽히 알고 시행했으나 아테네는 액면 그대로 듣고 사절단을 붙잡아 우물에 강제 입수시켰고, 스파르타는 "THIS IS SPARTA!!"라는 사자후와 함께 사절단을 우물로 골인시켰죠.
  • 파리13구 2014/11/18 10:24 #

    혹시 출처를 알수 있을까요?
  • ㅎㅎ 2014/11/18 10:58 # 삭제

    ... 페르시아가 석기무기를 썼다구요???? 혹시 슬링(돌팔매) 이야기하시는거에요? 그건 그리스도 썼는데.. 그리고 그리스 중장보병 다 청동갑주 입은거 아닙니다. 천으로 만든 갑옷도 다수 사용했구요. 대체 페르시아를 어떻게 생각하시길래...
  • 레이오트 2014/11/18 10:59 #

    페르시아 전쟁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톰 홀랜드의 페르시아 전쟁이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이 책은 페르시아 전쟁을 최초의 동서양 문명 충돌이라고 정의하고 있지요.
  • 파리13구 2014/11/18 11:02 #

    레이오트 님/

    감사합니다.
  • 레이오트 2014/11/18 11:09 #

    ㅎㅎ// 당시 페르시아군은 100여개가 넘는 국가나 민족의 군대가 혼재된 군대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군대 중에 아프리카의 원시부족 전사들로 구성된 부대가 있었으며 이들은 그 당시에도 전투용 곤봉이나 화살촉 등에 석재를 썼지요.

    페르시아군의 정예병이자 1만명 정도의 전투손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예비전력이 풍부했다고 하는 임모탈 부대의 갑주는 페르시아식 미늘갑옷이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갑옷은 기동성이 좋으면서 화살과 같은 투사무기에 대해서는 효과적인 방호능력을 보여주나 창이나 도검과 같은 찌르고 치는 무기에는 상대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요. 거기다 임모탈이 쓴 방패는 버드나무와 같은 유연한 나무의 가지를 엮어 만들어서 가볍고 화살에 강하지만 미늘갑옷과 마찬가지로 찌르고 치는 무기에 약했지요.
  • ㅎㅎ 2014/11/18 11:20 # 삭제

    단순히 미늘갑옷이고 도검류에 약해서 졌다는 이야기는 너무 단편적인 이야깁니다. 그런 기준으로 하면 사슬갑옷입은 공화정 로마군이 팔랑크스 중장보병을 못이겨야죠. 페르시아 전쟁에서 회전 자체가 그다지 많지 않았고, 페르시아의 대규모 회전 패배인 마라톤이나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호플리테스의 우위가 있었던건 사실이지만, 역으로 이후 펠타스트가 호플리테스를 제압하는 등 복잡다단한 상황이 교차됩니다. 그걸 단순히 장비의 우열만으로 이야기하는건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고, 특히 서구 역사가의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표현들은 서구 문명의 승리를 묘사하면서 이런 부분을 과장되게 묘사하는 부분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 레이오트 2014/11/18 11:33 #

    ㅎㅎ//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었군요.
    서구 역사가의 그런 시각을 반영한 매체 중 끝판왕이라면 영화 300을 들 수 있겠지요. 물론 그 당시 페르시아군이 자신들의 영향력 하의 나라와 민족의 군대를 규합하여 그리스를 침공한 것이라고 해도 페르시아군에 대한 묘사는 어떤 경우에는 심하게 역겹기까지 하더라고요. 뭐, 그것도 당시 그리스인의 시각으로 보고 말한 것이라면 그게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요.
  • 옵대장 2014/11/17 18:25 # 답글

    자유, 주인의식은 당연히 군의 의식 수준 향상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단 의식수준향상에는 그것만 있지는 않다는 것도 생각해야겠지요. 그리고 고대에 주인의식을 가진 군을 만단위로 가질 수 있었을지는 ^^;
    개인적으로는 그냥 하나의 요소일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 봅니다.

    또한 페르시아가 자유롭다하더라도 그 군 구성원 전부가 참정권을 가진것은 아니기에 그 둘을 같은 선상에 두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 파리13구 2014/11/18 10:24 #

    네, 페르시아의 자유의 한계에 대해선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 ㅎㅎ 2014/11/18 11:09 # 삭제 답글

    페르시아 전쟁에서의 승리가 그리스 민주주의의 자주의식의 승리에 있다고 본다면, 그 자주의식을 아프가니스탄 파슈툰의 복수, 부족제, 배타주의에도 적용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페르시아의 타문화나 종교에 대한 관용에 비해서 그리스가 더 배타적이지 않은가요?

    유리한 페르시아 전쟁만 가져다 쓰면 민주주의가 참주가 없기 때문에 더 자신의 국가를 지키기 위해 열정적으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로마와의 분쟁에 피로스를 끌어들였던 타렌툼의 사례는 어떨까요. 피로스를 불러들여 로마와 싸우게 하고 띵까띵까 놀아보려다 파국을 맞은 타렌툼은 민주정의 어리석음으로 해석해야 하는건지..
  • kldjfl 2014/11/18 11:46 # 삭제 답글

    노예한가득+소수민주 vs 전제정치인데 과연 어느쪽이 자주나 자유가 높았을까요? 그리스 민주정치는 방대한 규모의 노예를 바탕으로 가능한 것이며, 사회 전체를 보겠다면 민주정과 노예제를 함께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스 자유의 승리란 곧 그리스 노예제의 승리겠죠. 그게 참 잘도 자유의 승리겠습니다.
  • 까마귀옹 2014/11/18 21:18 # 답글

    래리 고닉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에서는 이런 표현이 나오더군요.

    "당시 그리스 군은 자신들의 고향과 가족, 그리고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 아래 싸웠기 때문에 페르시아를 상대로 이길 수 있었다고 하지만, 페르시아 제국에게 복속당했던 이민족들도 자신들의 고향과 가족, 그리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페르시아 군과 싸운 건 마찬가지였다."

  • 파리13구 2014/11/19 10:56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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