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매케인,"헨리 키신저가 나를 구했다!" ^^ Le monde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


[키신저]
[매케인]

존 매케인이 헨리 키신저 90회 생일때 한 발언?

헨리 키신저는 2013년 6월, 자신의 90회 생일을 맞아, 미국 뉴욕의 세인트 레지스 호텔에서 축하연을 열었다.


축하객은 다음과 같았다.

빌과 힐러리 클린턴 Bill and Hillary Clinton

존 캐리 (현 미국 국무장관)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텡 (전 프랑스 대통령) Valery Giscard D’Estaing

도널드 렘스펠드 (전 국방방관)

제임스 베이커(전 국무장관)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페트레이어스 (전 중앙정보국 국장) David Petraeus


존 캐리 국무장관은 축사에서 키신저를 미국에서 꼭 필요한 정치인이라 칭송했다.


하지만, 이 날 주목받은 것은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었다고 한다.


매케인은 축사를 통해, 자신과 키신저간의 옛 인연을 소개하고, 오늘날의 자신을 만드는데 일조한 것은 바로 키신저 였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폭격기 조종사였던 매케인은 1967년 10월 26일 북베트남에서 작전 중 격추당해서 포로가 되었다. 그는 베트공으로부터 잔인한 대접을 받았고, 고문 당했다. 

매케인의 정치적 신화는 바로 당시 포로시절에 만들어진 것으로, 매케인은 아버지가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관이 되면서, 베트공 측의 조기석방 제안에도 불구하고, 다른 동료 미국 포로보다 먼저 석방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탄생했다. 매케인은 "먼저 들어온 사람이 먼저 나간다."는 군인 수칙에 따라, 본인보다 먼저 잡힌 포로들이 모두 석방될 때까지 석방 될 수 없다며 제안을 거절했다.

매케인은 신화 탄생 과정에서의 키신저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때마침, 헨리가 베트남과의 전쟁을 종결하기 위해서 하노이를 방문했다. 베트남인들은 그에게 나를 그와함께 떠날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키신저가 그 제안을 거절했다. 헨리는 베트공에게 매케인은 다른 포로들과 같은 절차에 따라 귀환할 것이라 말했다. 그는 나의 조기 석방이 나의 아버지에 대한 특혜라고 인식했고, 우리의 행동 규칙 위반이라고 보았다. 이같은 직무유기적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면서, 헨리는 나의 명성, 나의 명예,나의 인생을 실제로 구했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부터 그에 대한 빚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나는 내 친구 헨리 키신저에게 축하 인사를 보낸다. 그는 고전적 현실주의자로, 그의 조국의 국익을 위해서 세계를 더욱 안전하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서, 미국의 자부심과 목적이라는 이상이 더욱 안전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같은 의무와 명예감 덕분에, 헨리는 그가 만난적도 없는 한 사나이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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