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를 바라보는 독일과 일본 제국주의의 차이는?" Le monde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1939년 9월...


[제국주의]
[민족주의]
[나치][제3제국]
[일본제국]



독일과 일본의 제국주의가 각각 자신의 정복지를 늘려가면서, 피정복지 주민의 정치적 지지를 받아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정치적 수사를 동원, 점령이 정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해방이라 선전하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독소전쟁 이후, 독일이 우크라이나, 발트 3국 등지에서 소련 지배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민족주의 수사를 이용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일본은 아시아를 아시아인에게로 라는 대동아공영권 논리를 동원하는 것이 가능했다.

마크 마조워에 따르면,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은 민족주의를 적절하게 이용했지만, 독일은 이에 실패했다고 한다. 심지어 전쟁의 전황이 독일에게 불리해지는 상황에서도, 독일은 전후 독립약속 등의  점령지에 대한 정치적 양보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정복지의 민족주의를 정치적 선전 전쟁을 위해 이용하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아시아 민족들이 자신과 함께 하도록 유도하는데 민족주의를 적절하게 이용했다. 일본은 아시아의 해방된 민족들간의 협력 및 상호간의 주권과 독립을 존중한다는 정치적 청사진을 제시했다. 1943년에 열린 대동아 회의에는 중국,만주국,태국,버마 필리핀 뿐만아니라 자유 인도 운동의 지도자도 참석했다. 바로 여기서 새로운 국제주의가 논의되었고, 일본외무부는 연합국의 대서양 헌장에 상당하는, 아시아의 해방을 위한 선언을 발표했다. 일본은 인기없는 유럽의 식민지배 체제를 전복시키면서 정치적 이익을 누렸지만, 독일은 동유럽에 대한 소련지배에 대해서 유사한 논리를 동원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중동에서도 영국 제국주의 지배를 타격하기 위해서 아랍 민족주의 논리를 동원할 수 있었지만, 이에 역시 소극적이었다. 이는 히틀러가 앵글로-색슨족의 인종적 우위를 믿었고, 지배인종으로서의 영국의 종말을 재촉시키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보다 중요한 점령된 옛 소련의 영토에서, 민족주의를 지원하자는 여러 제안이 히틀러에게 제시되었지만 그는 이를 묵살했다. 독일 외무부는 중동, 인도, 중앙 아시아에서 민족주의를 고무시키는 계획을 수립 중이었고, 군과 로젠베르크의 동방부도 우크라이나와 발트해 국가의 민족주의를 이용하고자 시도했다. 심지어 괴벨스 조차도 선전의 목적을 위해서 민족주의 이용을 검토했다. 일본 외무장관이 인도의 독립을 지지하는 강력한 연설을 할때, 괴벨스는 일본의 간계를 간파, 우리도 이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라 해석했다.

일본은 동맹국 독일의 이같은 태도에 대해서 답답했다. 특히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독일주재 일본대사 오시마는 리벤트로프 독일 외무장관 및 히틀러와 상황을 논의했고, 독일측을 설득시키려 노력했다. 오시마 대사는 히틀러에게 다음을 조언했다.

"러시아 내부의 다양한 민족들의 존재를 고려할때, 이같은 민족들의 해방이 우리의 주요 슬로건이 되어야 합니다. 점령된 동부 영토에서 독일정책의 기초로, 독일이 이같은 관점에서 러시아에 대한 정치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대해서 히틀러는 전장에서의 사기 저하를 이유로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후에도 오시마는 거듭, 정책수정을 건의했지만, 걸림돌은 항상 히틀러였다. 

결국, 나치의 유럽에서, 일본식의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 같은 구호는 없었고, 간접 통치를 위한 독일의 구상도 없었다. 

히틀러는 끝까지 독일 민족주의자로 남았고, 그는 독일의 국익을 위해서 다른 피정복민의 민족감정과 타협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


참고-

Mazower ,Hitler's Empire: How the Nazis Ruled Europe, 588-590쪽   



덧글

  • 지나가던과객 2014/08/29 19:16 # 삭제 답글

    히틀러가 민족주의를 잘 이용했다면, 전후에 소련에서는 더 많은 피가 흘렀겠네요.

    스탈린 서기장 동무께서 그런 민족주의 반란을 가만히 두고 볼 사람이 아니니 말입니다.
  • 파리13구 2014/08/29 20:01 #

    네, 실제로 우크라이나에서 그랬다고 합니다.
  • 재팔 2014/08/29 20:25 # 답글

    찬드라 보스가 일본에 간 이유를 이해하겠군요
  • 파리13구 2014/08/29 20:57 #

    네...
  • 백범 2014/08/29 23:04 # 답글

    한국의 광적인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나치와 다른점이 뭔지 저는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반대파 20만명을 전부 나치부역자로 몰아 학살했지만 정작 알제리와 베트남에 절대 사과하지 않고, 안도라의 영주권을 지금까지도 포기못하는 그런 프랑스의 드골을 마치 위대한 영웅인 양 숭배하는 것도 그렇고...
  • 바람불어 2014/08/30 00:59 # 답글

    저 대아시아주의가 전쟁이후 일본우익이 전쟁과 침략을 정당화하는 정신상태가 된거겠죠. 물론 우익만 아닌 일본인에게도 저런 아시아주의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있는듯합니다. '의도는 좋았다''서구열강의 야욕때문에' 뭐 이런거.

    그리고 식민지 조선에 천황숭배를 강요한 것도 특이한 사례 아닐까요? 무신론이라 할 유가의 바탕위에 불교나 무교가 보편적인 조선땅에 ,,,조선사람이 보기엔 택도 없는 외국 군주에 대해 종교적으로 숭배하라고 강요한 것도 좀 웃기더군요.
  • 2014/08/30 09:56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아이지스 2014/08/30 10:52 # 답글

    히틀러가 머리가 조금이나마 돌아갔으면 최소 우크라이나 인들은 마지막 한 명까지 스탈린에 맞서 싸웠을 겁니다
  • KittyHawk 2014/08/30 11:10 # 답글

    일본의 태평양 전쟁 기간의 전체 행보를 보면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라는 구호도 실상은 거짓말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점령지내 일본군과 현지 주민의 관계에 따른 치안 등급을 분류한 장교가 있을 판이었으니 말이지요. 특히나 중국 방면에서의 잔혹한 행동이란 것도 굳이 할 필요가 있는건지 의문도 들게 만들죠. 그냥 반공 전쟁임을 강조해 상당히 귀찮은 팔로군만 때려 잡고 반대 성향 중국인들의 지지를 받고 국민당측과 적당히 타협한다는 선택지 자체를 생각 안 한 전쟁진행은 여러모로 어이가 없더군요.
  • 재팔 2014/09/03 11:52 #

    국민당측과 적당히 타협한다는 구상 정도야 이미 전쟁 중에 육군 내부에서도 나왔습니다.-_-;; 전면전쟁에 들어온 상황에서 팔로군만 때려잡는다는 건 말고 안되는 거죠.
  • 시안레비 2014/09/07 20:10 # 답글

    지금과는 두 나라의 행보가 정반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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