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총독 한스 프랑크의 일기,1941년 12월 16일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1939년 9월...

<한스 프랑크, 폴란드 총독>


[홀로코스트]
[한스 프랑크]
[폴란드 총독부]
[유대인 문제][최종해결]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고, 그 직후에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하면서, 전쟁의 세계대전화가 결정되었다.

이같은 전쟁의 확대발전과 함께, 나치 독일의 유대인 정책도 급진화되었다. 처음으로 히틀러가 유대인의 실질적인 절멸에 대해 언급했던 것이다. 

1941년 12월 중반 베를린에서 히틀러를 만나고 크라코프로 귀환한 폴란드 총독, 한스 프랑크가 부하들에게 유대인문제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유대인을 끝장내야 한다.

나는 그들을 동부로 이주시키기 위한 협상에 돌입했다. 문제에 대한 거대한 논쟁이 다음 1월에 베를린에서 열릴 것이다. 

아무튼, 대규모 유대인 이주가 시작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대인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가? 제군들은 그들이 오스트란트 ostland 의 정착촌에 정착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베를린에서 토론한 것이다. 왜 이런 것이 근심거리가 될까? 우리는 오스트란트에서도 제국관구 Reichskommissariat 에서도 그들을 처리할 수 없다. 따라서 제군들 스스로 처리하라.  

제군들, 나는 제군들이 연민의 감정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그곳이 어디든 그들을 발견하는 곳에서 그곳이 가능한 어디서든 유대인을 제거해야만 한다. 이는 제국 전체의 질서를 위해서다. 이같은 의지는 자연적으로 훔멜 hummel 국장이 제시한 방법으로만 실행될 수 밖에 없다. 특별법원도 이를 책임질 수 없다. 이는 사법 절차 구조의 한계 때문이다. 이같은 구시대적 관점이 이같은 거대하고 독특한 사건에 적용될 수 없다. 우리는 아무튼 목표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하고, 내 생각도 이와 같다.

유대인은 우리에게 특별한 악마적인 식충에 불과하다. 우리 폴란드 총독부에 현재 대략 250만명의 유대인이 있고, 유대계 혼혈까지 포함하면 350만명의 유대인이 있다. 우리는 350만명의 유대인을 총살하거나 독살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절멸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이는 제국의 토론에서 결정될 엄청난 조치와 관련될 것이다. >>


- 한스 프랑크

폴란드 총독

1941년 12월 16일

그의 일기 중에서


- 홀로코스트의 역사에서 1941년 12월이 중요한 것은, 처음으로 히틀러가 유대인의 실제 절멸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당시 폴란드 총독부에는 독일 유대인보다 10배나 많은 유대인이 있었고, 이들 또한 제거대상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어디에서 그들을 제거할 지가 관건이 되었다. 

옛 소련 땅으로의 강제이주는 불가능했다. 폴란드 유대인이 갈곳은 없었고, 그들은 제거되어야만 했다. 

명백하게도, 당시 한스 프랑크는 이같은 엄청난 학살을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지 아직 알지 못했다.


1942년 1월 20일 베를린 근교에서 반제 회의가 열린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으로 소집되었으며 독일 제국 중앙안보국의 유대인 문제 담당국장 아돌프 아이히만을 비롯해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이끄는 15명의 나치 관료가 참석했다.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이 논의되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