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영국을 제압하기 위한 미국의 소프트파워?" Le monde

"고종,시어도어 루스벨트 그리고 에피카르모스"


[미국]
[미국의 부상]
[제국주의][대영제국]
[국제법][국제분쟁][중재재판]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 대외정책에서 중요하게 등장한 것이 미국과 영국 및 캐나다와의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중재를 통한 사법적 해결책이었다. 그것이 바로 중재 재판 international arbitration 이었고, 분쟁 당사국이 스스로 선정한 재판관에 의하여 법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분쟁을 구속력있는 판정으로 해결함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였다.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헤이그 협약,1907년)

국제 분쟁의 사법적 해결을 위한 근대적 효시는 제이 조약 Jay's Treaty 이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제이 조약(Jay's Treaty)은 1794년 11월 19일에 미국과 영국 사이에 체결된 국제 조약으로, 비준은 이듬해 1795년에 되었다.  이는 미국의 독립전쟁 후속 처리를 위한 것이었고, 조약에 의거, 협상을 통해 해결되지 않은 분쟁은 양국인 동수로 구성된 위원회에 회부하여 해결하기로 했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제3자적 분쟁해결기관이라 할수 없었지만,실제로는 어느정도 사법 기관 역할을 수행했고, 결과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중재재판을 통한 국제분쟁의 해결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 바로 앨라배마호 배상문제 [Alabama claims, ― 號賠償問題] 였다. 분쟁의 초점은 영국에서 건조되어 북군 상선들을 공격하는 데 사용된 남군의 순양함인 '앨라배마호'였다. 이 순양함은 프랑스의 셰르부르 항 앞바다에서 북군의 '키어사지호'에 의해 1864년 6월 격침될 때까지 22개월 동안 북측 상선 68척을 나포·격침하거나 불태웠다.영국은 전쟁초에 남부연합의 주문으로 앨라배마호를 비롯한 몇 척의 배를 건조하거나 무장해 출항시켰다. 우수한 장비를 갖춘 앨라배마호는 레페이얼 셈스 함장의 지휘하에 남군의 다른 경무장 쾌속선들과 함께 약 2년간 공해상에서 북군의 선박들을 사실상 격멸시켰다.   

남북전쟁 이후, 영국이 건조한 남군 함정으로 인해서 미국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 영국이 책임져야 한다는 비난 여론이 미국에서 제기되었다. 미국 정부는 이 문제를 국제 중재재판에 상정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만약 영국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미국이 캐나다를 병합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은 1871년 워싱턴 조약을 체결, 전쟁 기간 중 영국이 남군에게 앨라바마호를 판매한 사실이 중립법 위반인지 여부를 제3자적 기관을 통해 다루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재판의 준칙을 미리 합의하고, 미국과 영국을 포함, 브라질,이탈리아,스위스 출신의 각 1명, 모두 5명의 재판부를 구성, 사건을 심리하기로 합의했다. 중재재판 결과, 재판부는 영국이 중립법을 위반, 배상의 의무가 있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영국이 앨라배마호를 비롯한 여러 선박들이 일으킨 직접적인 손실에 법적 책임이 있으며, 미국의 손실에 대해서는 1,550만 달러에 상당하는 금으로 배상하도록 만장일치의 판결을 했다. 이는 미국이 알래스카를 매입하기 위해 지불한 금액의 두 배였다.

1872년 10월, 캐나다와의 북서쪽 국경문제가 분쟁이 되어, 독일 카이저에게 중재 재판이 위임되었다. 독일 황제는 미국 편을 들어 주었다.

그리고 캐나다 근해 어업권 분쟁은 부분적으로만 해결되었지만, 이상의 3건의 사건은 중재를 통한 국제 분쟁의 사법적 해결을 위한 선례를 남겼다. 

이 보다 중요한 것은 위의 사건들이 두개의 영어권 국가들의 외교적 화해를 위한 초석이 되었고, 이것이 20세기의 국제문제에서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영국과의 갈등에서 미국은 전쟁,세력균형,동맹외교 같은 유럽식 방식이 아니라 국제법을 기반으로한 중재재판을 통한 해결을 주장했다. 전체적으로 앨라배마호 배상문제 재판은 국제법이 가진 강제력의 승리이자 미국 외교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일찌기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외교의 임무란 자국의 이익에 세계적 정의란 이름의 옷을 입히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19세기말, 미국이 서반구의 강대국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국제분쟁의 사법적 해결을 위해서 주장한 것이 바로 중재재판이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중재재판을 통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세계적 정의라는 이름의 옷을 입힐 수 있었고, 이것이 바로 부상하는 미국의 소프트파워였다. 



덧글

  • 함부르거 2014/04/02 00:19 # 답글

    미국과 영국의 사법체계가 거의 동일하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것이 국제법적 해결방법을 만들 수 있었던 원인이 아닐까 싶네요. 같은 문화권이 아니었다면 판결에 대한 승복은 커녕 재판과정도 동의 못할 가능성도 높았을 테니까요.
  • 파리13구 2014/04/02 11:45 #

    네, 그리고 이를 주도한 것은 미국이었고,

    영국은 끌려가는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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