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주의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이유는?" Le monde

"고종,시어도어 루스벨트 그리고 에피카르모스"

[미국사]
[제국주의][인종주의]



니알 퍼거슨은 콜로서스-아메리카 제국 흥망사에서 미국 제국주의 논리의 특징으로 다음을 지적했다.

<<제국주의 지배에 맞서 독립전쟁을 치르는 가운데, 미국은 결코 제국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를 내렸다. 오늘날 많은 미국인들은 루퍼트 에머슨이 1942년에 한 말에 공감할 것이다 : 미국-스페인 전쟁의 짧은 기간에 제국주의적 형태를 보인 것을 제외하면, 미국민은 멀리 있는 나라의 정복이나 외국인 지배에 뿌리 깊은 혐오감을 보여왔다." 묘한 점음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보다 더 자부심이 대단한 제국주의자들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들이 지향한 제국은 자신들이 기피한 제국과 성격이 많이 달랐다. 서유럽의 해양 제국을 본받으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콜로서스-아메리카 제국 흥망사,89쪽]

퍼거슨에 따르면, 미국 역사에서도 영국식 제국주의 모델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보호무역주의자들과 인종주의자들의 비난에 직면했다고 한다. 

<<미국에도 이런 노선[영국식 제국주의]을 따르자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보호무역주의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미국은 영국과 달라서 식민지가 필요없다는 것이었다. 식민지가 있어봤자 미국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상품을 미국 시장에 넘치게 할뿐이라는 주장이었다. 

또한, 미국 이민의 성격 변화에 못마땅해 하던 인종주의자들은 식민지를 경영할 경우 저질인종의 유입이 심화될 것을 우려했다. 

각자 나름의 편견에 입각해 있었지만, 보호무역주의자와 인종주의자들은 제국주의의 친구가 될수 없다고 판명되었다>> [콜로서스-아메리카 제국 흥망사,104쪽]

스티븐 월트는 "미국이 대영제국 몰락에서 배워야할 것은?"라는 글에서, 미국이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배웠다고 지적했다.

<<-일단 제국 건설이 시작되면, 언제 멈춰야 할지를 모르게된다. 

1781년 이후의 대영제국의 팽창은 잔략적 비용과 자산을 이성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가령, 일단 인도를 지배하기로 결심한 영국이 이집트,예멘,케냐,남 아프리카,아프가니스탄,버마,싱가폴로 추가 확장하는 것은 용이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세실 로즈 Cecil Rhodes 같은 야망있는 제국주의자들이 새로운 제국건설 계획을 주장한 탓이기도 했지만, 추가적인 식민지 획득은 가장 최근에 얻은 식민지를 보호하기 위한 어쩔수 없는 확장이기도 했다. [역자주- 가령, 일본 제국주의도 조선을 장악한 후, 조선 지배를 위해서는 만주 장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제국주의 역사는 하나의 빌어먹을 것을 위해서 다른 빌어먹을 것이 필요하다 "just one damn thing after another," 는 논리에 기반했고, 이것이 바로 제국 팽창의 과정이었다.    

-제국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무능한 민족들을 떠안아야 한다.

브랜든의 서술에서 반복되는 주제는 대영제국이 통치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무지와 무능 정도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약간의 유능한 개인을 포함하기는 했지만, 영국의 식민지 지배에는 많은 거만하고,부패하고,인종주의적인 광대들이 포함되었다. 

미국의 이라크 지배에도 과거 영국의 시련이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이같은 논리로 볼때, 제국주의자가 인종주의자가 될수는 없는 법이다. 제국이 인종적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히틀러 제3제국의 역사가 보여준다. 즉 제국주의자 라면, 제국의 팽창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게 되고, 이는 다양한 제국외 집단의 통합이라는 가치를 존중한다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인종간의 결합, 인종간 결혼은 불가피한 것이고, 따라서, 제국주의자는 인종주의적 순수성, 혈통의 순수성에 대해 거리감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히틀러 사상의 특수성이란, 바로 그가 제국주의자 이면서, 동시에 인종주의자 였다는 점이다. 제국은 팽창하는데, 아리아인종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매우 소중하다면, 비 아리아인의 체계적인 <절멸>은 자연스럽게 고려할 만한 논리적 결론이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독일 제3제국 역사를 보면, 1942년에 다음과 같은 모순에 직면하게 되었다.

독일이 제국화 하면서, 독일민족의 순수혈통은 더욱 위협받게 되었다.이는 전쟁이 가열화되면서, 건장한 독일 남성들이 전선으로 징집되는 비율이 높아질 수록,독일 본국이 해외 노동자들의 이주지가 되면서 발생하게 된 현상으로,독일인 과 비독일인 간의 성적 접촉 가능성은 다른 어느 때보다 더 높아지게 되었고, 이는 유럽을 독일화하기 원하는 나치 정권에게 두통거리가 되었다. 즉, 제3제국이 <더렵혀지고 있다>는 상황인식이었다.   

가령, 1942년 1월, 나치 친위대 보고서는 다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제국의 모든 지역에서 올라온 보고서들, 포츠담, 빌레펠트, 바이로이트, 켐니츠,할레, 라이프치히 등의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 수백만명이 배치됨으로써, 독일 여성 과의 성관계가 꾸준히 늘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사람들에게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쳐 왔다.  오늘날 유력 인사들은 독일 여성들이 외국인과 관계를 맺어 불법적으로 낳은 아이가 적어도 2만명에 이른다고 추정하고 있다. 독일 혈통의 오염 위협은 독일 남성 수백만 명이 징집되고, 외국인과의 성관계를 전면 금지하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상황으로 인해 더욱 증가하고 있다. 독일 혈통을 가진 여성들의 경우, 이들과 접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은 종종 성적 관점이 매우 높은 여성들이며, 외국인을 흥미로운 눈으로 본다. 따라서 외국인들이 쉽게 그런 여성들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나치 이데올로기는 모순 투성이 였다.

한 국가가 제국화 하면서, 인종적 순수성은 지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치는 미리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했다.  결국, 나치는 이길 가망이 전혀 없는 인종전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고,나치 제국주의는 인종적 순수성이 아니라 인종 혼합성을 증가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덧글

  • 솔까역사 2014/03/31 17:58 # 답글

    제국주의도 포용력이 없으면 아무나 못하는 거군요.
  • 파리13구 2014/03/31 18:01 #

    그렇습니다.
  • 제르진스키 2014/03/31 18:18 # 삭제 답글

    아프칸 침공사를 보면, 소련군 병사들이 아프칸 원주민들을 '야만족'이라 부르며 인간 이하로 보았다는 기록들이 보이던데..

    소비에트의 멸망원인도 건국초기의 이데올로기적 포용성이 스탈린 이후 대러시아 중심주의로 바뀌어가면서 일어난 제국의 분열에서 야기되었다고 볼 수 있을 지도..
  • 파리13구 2014/03/31 18:22 #

    흥미로운 지적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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