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를 날려버린 브래들리의 한마디는? Le monde

맥아더가 루비콘 강을 건넌 날? ^ ^

                                                         <오마 브래들리 장군>

“잘못된 곳에서 잘못된 때에 잘못된 적과 싸운 잘못된 전쟁” "The wrong war, at the wrong place, at the wrong time, and with the wrong enemy" 이라는 표현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 15일, 당시 미국 합참의장이던 오마 브래들리 장군의 유명한 질책이다. 브래들리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제안한 중국으로의 한국전쟁 확대 주장을 강하게 반대했고, 1951년 4월 11일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맥아더를 사령관직에서 물러나게 만든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브래들리의 증언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전면전 회피 전략이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고, 공산주의를 막고 있으며, 우리가 세계대전에 말려들지 않도록 보장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추호의 의혹도 없다. 세계대전을 막기위한 인내와 결의의 정책으로, 우리는 우리 군사력을 증진시킬수 있고, 우리는 이 정책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믿는다.

현 상황에서, 우리는 한국전쟁을 붉은 중국으로 확대하자는 주장에 반대한다. 자주 붉은 중국과의 제한전으로 묘사되는 행보는 우리가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하지 않은 지역에서 너무도 많은 우리의 힘을 소모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붉은 중국은 세계 정복을 추구하는 강한 국가가 아니다. 솔직히, 합참의장의 입장에서, 확전 전략은 우리를 잘못된 곳에서 잘못된 때에 잘못된 적과 싸운 잘못된 전쟁에 개입시키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본다."


이상의 브래들리의 증언은 맥아더에게 결정적인 타격이 되었다. 브래들리는 중국과 전면전을 감행한다면, 서유럽이 소련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라 증언했다. 그리고 당황한 맥아더는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는 유럽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세계적 차원의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답변 했다고 한다. 이는 치명적인 자인이었다. 그리고 청문회가 끝나고, 맥아더에 대한 신뢰는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한다.

이렇게 노병은 죽지않고 사라져갔다. 

덧글

  • K I T V S 2013/12/18 13:21 # 답글

    그의 한 마디에 어쩌면 3차대전은 막았을지 몰라도... 우린 기나긴, 지금 나한테도 영향미치는 짜증나는 분단체계를 완성하는게 기여를 했...
  • 파리13구 2013/12/18 14:51 #

    만약 세계대전으로 세상이 멸망한다면,

    한반도 통일도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 모튼 2013/12/18 15:04 #

    미국인에게 바다 건너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게 더 희생하라고 말할 수도 없으니까요(먼산)
  • 검투사 2013/12/18 23:17 #

    기실 카스트로가 1962년 10월의 위기가 지난 뒤 소련의 높으신 분들 더러 "불알이 없는 양반들"이라며 욕한 것도, 따지고 보면 KITVS 님과 같은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죠. 카스트로 또한 병 때문에 정권에서 물러나 사실상 상왕이 된 뒤 그걸 깨달아서인지 유투브 등을 통해 반핵 활동을 하고 있더군요(http://www.youtube.com/watch?v=1f_UPdbOIH8 참조).
  • K I T V S 2013/12/18 23:20 #

    아니, 내가 카스트로라니! ㅠㅠ
  • 만슈타인 2013/12/19 03:18 #

    글쎄요 그 당시 전력이라면 유럽 불바다 이후 미국 천하통일일 듯 한데요
  • ㅇㅇ 2013/12/18 16:00 # 삭제 답글

    그리고 몇년 후 베트남전을 시작하는데~~
  • 포크의 헉헉 2013/12/18 18:44 # 답글

    확실히 소련군을 본적이 있는 브래들리 답게 소련의 무서움에 대해 잘 알고 있군요. 사실 미국의 입장에서 봐도 서유럽을 소련에 뺏기는 것보다 큰 손실을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맥아더가 한국전쟁당시 무리한 확전을 한 이유는 본인의 전공이 부족해서도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오마르 브래들리의 경우 15년에 임관하는데 맥아더는 1903년에 임관하죠 거의 10년 넘게 차이나는 머리에 피도 안마른 후임이 유럽전선에 갔다는 이유로(물론 파벌 싸움도 있지만) 명령을 받는 입장이니까요.
  • rumic71 2013/12/18 19:31 #

    그런 기분은 왕년의 패튼이 더했겠죠. 아니 그냥 쌩까버렸으니 그만인가?
  • dunkbear 2013/12/18 19:57 #

    자기 부하였던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 된 거에 비하면야... ㅎㅎㅎ
  • 지나가던과객 2013/12/18 21:07 # 삭제 답글

    엔하위키에서 본 것이지만, 맥아더 이 양반 능력은 있는 사람이지만, 너무 명예욕이 강하고 더불어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양반이라 인간관계가 엉망인 사람인 것 같더군요.

    더구나 한국전에서 사령관직에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지휘를 안하고 일본에서 지휘를 하고 있으니 그게 더 마음에 안 들더군요.
  • rumic71 2013/12/18 22:10 #

    인천 성공시킨 걸로 다 용서해줄 수 있습니다. 더우기 당대 한국군 장성들에 비하면 갑이죠.
  • 허안 2013/12/19 11:15 # 답글

    항상 궁금하던 일이지만, 중국의 개입전에 종전하거나 종전협상으로 북한 수뇌부를 중국이나 소련으로 망명시키는 시나리오는 불가능했으려나요. 뭐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 파리13구 2013/12/19 11:42 #

    중국 입장에서 보면, 북한 유지는 중국의 안보적 이해가 달린 일로

    심각하게 생각했을 것으로 봅니다.
  • 메이즈 2013/12/23 15:27 # 답글

    사실 저 문제는 좀 복잡한 게, 당시 소련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핵전력은 이제 갓 개발되어 조금씩 만들기 시작한 상황이었고(실제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미국이 먼저 쓰면 썼지, 소련이 먼저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유럽 지역은 전쟁 피해로 초토화된데다 동유럽 복구까지 떠맡아야 했기 때문에 돈 들어갈 곳은 많았지만 정작 쓸 수 있는 돈은 적은 상황이었죠.

    즉 실제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을 친다고 해서 소련이 나섰을 거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물론 중국 전역에 대한 점령을 시도하는 식으로 소련의 안보와 관련 치명적인 위협이 가해진다면 모르겠습니다만 미국의 의도는 북진 통일 이상이 아니었음이 명백했기 때문에(중국 공격이 목표였다면 국민당이 망해갈 때 개입했을 겁니다) 소련으로서도 개입할 이유는 없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당시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결정도 비합리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게, 냉전 시기의 소련은 현재의 중국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어 별도의 체제를 형성했고, 이 때문에 소련의 상황에 대해서 알려진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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