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는 체니의 꼭두각시였는가?" Le m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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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체니의 꼭두각시였는가?

피터 베이커, 불의 나날들 : 백악관의 부시와 체니, 2013년
Peter Baker, Days of Fire: Bush and Cheney in the White House (New York: Doubleday, 2013), 816 pp., $35.00.

아들 부시 대통령과 그의 부통령 딕 체니의 백악관 시절을 본격적으로 그린 816페이지 분량의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인 피터 베이커는 뉴욕타임스의 백악관 출입기자다. 

저자에 따르면, 두사람의 관계는 리처드 닉슨과 헨리 키신저 이래 가장 관심이 쏠리는 정치지도자들이었다 : 대담하고, 검증되지 않은 대통령과 그의 노련하고 매우 엄격한 부통령. 일련의 위기들을 차례로 겪으면서, 그들은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세계를 재창조했고, 그 과정에서 두 사람간의 관계도 재정립해 나갔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신화에 따르면, 체니는 어두운 힘을 사용해서 마음이 유약한 대통령을 조종하여, 부시가 자신의 명령에 따르도록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 때문에, 양자의 관계를 공동 대통령 the co-presidency 라 부르는 경우도 있고, 체니가 미국 대통령직을 강탈했다는 the hijacking of the American presidency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저자인 베이커에 따르면, 이 신화는 현실을 과장하는 것이고, 양자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체니는 의심할 여지없이 미국사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부통령이었다. 그는 과거 백악관 생활 및 의정경험을 통해서 워싱턴의 생리에 대해서 정통했고, 부시와도 신뢰관계였고, 부시는 체니를 자신의 상담인으로 간주했다. 부시는 체니에게 모든 회의와 결정에 참석하도록 했고, 이는 그의 전임자인 루스벨트와 다른 것이었다. 루스벨트의 부통령 해리 트루먼은 취임 이후 대통령을 단지 두번 만났을 뿐이었다. 2002년에 그와 부시가 얼마나 자주 만나냐는 질문을 받은 체니가 양복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서 그의 일정을 보여주었다 : "자 볼까요" "3번, 4,5,6, 7번..."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후, "오늘도 만납니다."

체니는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정치적 재능을 보여주었다. 1976년, 도널드 럼스팰드라는 정치적 후견인 덕분에, 포드 대통령 정권에서 체니는 34살의 나이에 최연소 백악관 비서실장 White House chief of staff 이 되었다.

1978년, 체니는 공화당 하원의원에 당선, 1989년까지 5선에 성공하게 된다. 1989년 아버지 부시 George H. W. Bush 정권에서 체니는 국방부장관이 된다. 그는 1991년의 걸프전을 성공리에 이끌었지만,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 남겨두는 치명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체니는 이후에 자신의 결정을 옹호하면서, 당시 연합군이 바그다드까지 곧장 진격하는 것은 무모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1년에 부통령이된 체니의 대통령 부시에 대한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다는 것이 저자인 베이커의 주장이다. 체니는 봉사자였지, 상관에게 명령을 내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베이커는 체니가 부시가 이미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한 사안을 수용하도록 만드는데 성공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체니가 부시에게 도전했던 사안들은 매우 적었다는 것이다. 체니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2002년 봄에 이라크 침공을 개시하는 것을 거절했다. 또한 체니는 이라크에 침공에 대해서 부시가 유엔의 동의를 얻으려하는 시도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부시 2기 행정부에서, 이라크의 혼란에 실망한 대통령은 권력 중심부를 개편하고자 했고, 이에 따라 체니의 네오콘이 갑자기 고립되었다. 수년동안 네오콘들은 국무부를 고립시키고, 워싱턴을 이라크 침공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이라크 상황이 악화되자, 2006년 중간선거 이후, 부시는 노선을 수정하기 시작했고, 네오콘들이 물러나고, 현실주의자들이 들어왔다. 국방부에서 럼스팰드가 로버트 게이츠 Robert Gates 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외교정책에서 콘돌리자 라이스가 국무장관이 되어 보다 온건한 외교정책을 추진했다. 라이스가 이같은 온건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라이스와 부시간의 진정한 우정과 친밀함이 중요했고, 이는 부시와 체니간의 관계를 능가했다고 한다. 심지어 라이스는 한번은 자신의 상관인 부시를 기자들 앞에서 실수로 "내 남편 my husband "으로 부르기까지 했다.    

이 책에서 가장 긴박한 장면에서, 부시의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북한의 지원을 받아 건설되는 시리아의 불법 원자로에 대한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쟁점은 미국이 시리아 원전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을 도와야만 하는가였다. 아니면, 이스라엘이 단독으로 그것을 하도록 내버려둬야만 하는가였다. 체니는 회의석상에서 원전에서 대한 미국의 공습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에 부시가 손짓을 하면서 다음을 질문했다 : " 여러분들 중에서 부통령의 의견에 동의하시는 분 계십니까?" 아무도 없었다. 

저자에 따르면, 부시의 2기 행정부가 끝나가면서, 체니의 정치적 고립도 심화되었다고 한다.



덧글

  • 에이브군 2013/12/06 15:45 # 답글

    파월이 좀더 여자이고 젊었다면 이라크전은 없었을텐데
  • 파리13구 2013/12/06 16:03 #

    왜죠?
  • 에이브군 2013/12/06 16:59 #

    부시랑 좀 더 친한 현실주의자가 있었다면 적어도 이라크전쟁이란 실수를 부시가 저지르게 냅두지 않았고 쫓겨나지도 않았을테니까요.
  • 루온 2013/12/06 18:08 # 삭제

    이제야 이라크전쟁에 반대한 현실주의 정치인 리스트가 나오고 하는 거지, 당시 분위기에서 대놓고 친한 사람 몇명이 반전목소리 낸다고 어떻게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 파파라치 2013/12/06 17:59 # 답글

    대체로 부시를 우습게 보는 경향들이 있는데, 현실 인식에 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바지사장 노릇 할만큼 만만한 사람은 아니죠. 오히려 자기 확신이 지나치게 강해서 문제였지.

    그나저나 부시도 나중에는 이라크 침공이 헬게이트를 열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던 것 같군요.


  • 만슈타인 2013/12/06 21:11 #

    아니 그루지야 전쟁때 러시아 폭격하자는 체니를 말린 거 보면 그래도 개념과 결단은 남아있는 축이지요 (먼산...)
  • K I T V S 2013/12/06 18:14 # 답글

    세계역사가 2010년 이후 비극으로만 이어지면 모든 사람들이 부시를 깔 날이 올까요? 이미 왔다고도 느끼지만;;
  • 만슈타인 2013/12/06 21:12 # 답글

    뭐 꼭두각시 갑은 레이건 아니겠습니까 부시보다 더 한게 공중파 방송에서 비서실장한테 아니 ㅆㅂ 대통령님 이건 이렇게 읽어야죠! 라고 지적 받는 거 나온 대통령이 (...)
  • 아이지스 2013/12/07 22:53 # 답글

    역시 전쟁광 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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