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폴 오사르스, 프랑스의 이근안? Le monde

[프랑스]알제리 와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 아르키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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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고문 기술자 폴 오사르스 Paul Aussaresses 가 12월 4일에 94세로 사망했다. 알제리에서 야만적 고문체제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만들었던 폴 오사르스는 그의 치명적인 고문기술을 미국의 CIA와 칠레 피노체트의 비밀 경찰에게 전수했다.

미국- 데일리 비스트 보도
2013년 12월 4일

폴 오사르스는 알제리 전쟁에서 알제리인들을 체계적으로 고문했고, 처행했다고 고백하면서 프랑스를 충격에 빠트린 적이 있었는데, 그가 12월 4일에 95세로 사망했다.

그는 제2차세계대전 동안 프랑스 레지스탕스였고, 베트남에서의 프랑스 식민지 전쟁에 종군했다. 오사르스는 1955년 정보장교로 알제리로 파견되었다. 2년후, 그는 알제리 전쟁을 지휘한 자크 마쉬 Jacques Massu 장군을 보좌했다. 오사르스는 알제리 민족해방전선 the Front de libération nationale (FLN)을 상대로 체계적인 고문 체계를 구축했고, 그가 체포한 용의자들을 수용하기에는 알제리의 프랑스 감옥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즉결 처분을 했다.

그는 2001년의 자서전에, "전날 밤에 심문을 했던 포로들이 다음 날 아침에 살아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라고 적었다. "포로들은 자백하거나 아니면 일반적으로 무력화되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알제리에서 고문이 광범위했고, 프랑스 정부의 고위층도 고문을 추천하지는 않았지만 용인했다고 주장했다. 이 정부 고위층 인사들 중에는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미래의 사회주의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사르스는 자서전에서 알제리에서의 고문 실태를 공개했고, 상황논리로 이를 정당화시키고자 했다 : "내 아내가 내게 내가 양심을 가책을 느꼈다고 쓰기를 원했지만, 나는 그렇게하지 않았다."

그의 자서전, 특수임무 : 알제리 1955-1957 Services Spéciaux: Algérie 1955-57 는 즉각 논란을 유발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자신도 알제리 근무 경험이 있었는데, 시라크는 이 책을 읽고 공포를 느꼈다고 했고, 오사르스에 대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취소했다. 파리 검찰은 오사르스와 플롱 출판사의 두 편집인을 전쟁범죄 연루 혐의로 기소했다. 3명 모두 벌금형을 받았고, 오사르스는 군복을 입을 권리를 박탈당했다.

프랑스 역사의 다른 추악한 면이 그랬던 것처럼, 알제리에서의 체계적인 고문은 최근까지도 프랑스 사회의 정치적 쟁점이다. 가장 유명한 폭로는 1958년 알제리계 프랑스인 언론인 앙리 알레그가 쓴 <심문>이라는 책이었고, 알제리 전쟁에서 사용된 고문법이 자세하게 소개되었다. 알레그는 출판사에 자신의 원고를 비밀리에 전달해야 했고, 출간 2주만에, 프랑스 당국이 이를 금서로 지정했고, 판매되지 않은 책들을 회수했다. 유사하게, 1966년의 영화 알제리전투에서, 마쉬 장군과 오사르스의 고문이 묘사되었고, 5년동안 상영이 금지되었다. 심지어 최근에도, 프랑스 공직자들은 전쟁의 야만에 대해 사과하는데 인색하다 ;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작년에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 지배를 잔인하고, 부당했다고 평가했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지 포기와 100만명 알제리 거주 프랑스인들이 강제로 본국으로 귀국하게 된 것은 프랑스 정치문화에 큰 분열을 야기했다. 샤를 드골 대통령의 결단, 즉 알제리 독립을 승인하기로 한 결단이 한 무리의 우익의 정치적 문제아들을 양산했다. 극우파 국민전선의 창시자인 장 마리 르펜이 대표적이다.    

알제리 독립 이후, 오사르스는 해외에서 고문기술을 전수하면서 살았다. 1960년 그는 미국 노스 캐롤리나의 포트 바르그로 가서, 알제리 전투와 그의 고문술을 강의했다. 오사르스의 고문술은 CIA요원 로버트 코머가 불사조 작전 Phoenix Program 이라 부른 것을 만드는데 영향을 주었다. 불사조 작전은 베트남의 베트콩을 대상으로 전개된 심문,고문,즉결 처분을 일컫는 것이었고, 이 작전 결과 대략 2만명이 죽었다. 

1970년대에 오사르스는 그의 현대전 교훈을 전수할 새로운 대상을 발견했다. 바로 칠체의 피노체트 체제였다. 오사르스는 당시 칠레군에서 일했던 프랑스 정보계 인사들 중 한명이었고, 피노체트의 야만적인 비밀경찰 교육을 담당했다.

2002년 9월, 한 방송 다큐에 출연한 오사르스는 알카에다에 대한 고문은 용의자들을 말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증언했다. 그의 자서전의 영문판, 카스바의 전투가 2005년에 출간되었다.

하지만 오사르스와는 달리, 과거 알제리에서 고문을 자행하던 프랑스군 장교들은 고문으로 많은 허위 정보들이 양산되었고, 고문 때문에 더 많은 새로운 테러분자들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오사르스의 상관, 자크 마쉬 장군도 고문에 대해서 사죄했고, 프랑스 정부 차원에서 알제리에서의 고문 자행을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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