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분쟁 연표-1967년 미분류

"핵보유국이 패전에 몰리면 반드시 핵무기를 사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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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6월 10일- 골란고원에서 휴전. 6일전쟁 종식

6월 19일- 이스라엘 내각이 평화를 조건으로 서안과 예루살렘을 제외한 모든 점령지로부터의 철수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이 합의는 심지어 이스라엘인들에게도 비밀이었다.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은 5대 원칙에 기반한 미국의 평화안을 제시했다 : 민족의 생존권 인정,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위한 정의, 자유로운 해상 항해, 군비경쟁의 제한 그리고 정치적 독립 및 영토적 통합 보장.

6월 23일-25일

미국의 존슨과 소련 총리 알렉세이 코시긴이 뉴저지의 글래스보로에서 만났다. 존슨은 양국이 기본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세부사항에서 이견을 보였다고 말했다. 소련은 이스라엘의 즉각적인 선-철수, 후-평화를 제안했고, 미국은 선-평화, 후-철수를 주장했다.

7월 4일 - 유엔 총회에서의 남미 결의안이 이스라엘에게 모든 점령지로부터의 철수와 교전 중단 그리고 지역의 모든 국가들간의 공존 조건의 조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 결의안은 아랍의 반대 때문에 통과에 필요한 2/3 지지를 얻지 못했다. 이스라엘이 매우 안도했다.

7월 20일- 이스라엘과 아랍이 미국과 소련이 제안한 6월 5일 전선으로의 철수안을 거부했다. 이 철수안은 사실상, 전쟁 이전 상태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8월 31일- 아랍 국가의 정상들이 하루툼 Khartoum 에서 만나, 이스라엘과의 무-협상, 무-인정, 무-화해 ,이른바 3무원칙을 발표했다. 

10월 10일- 이집트 미사일 함정이 시나이 해안에서 이스라엘 구축함 엘라스 Elath 호를 격침시켰다.

11월 22일- 유엔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242호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은 "이스라엘군이 최근의 분쟁에서 점령한 영토에서 철수할 것"과 "모든 요구와 교전 상태를 종식시킬 것"을 주장했다.

11월 23일- 시리아 정부가 242호 결의안을 조목조목,완전히 거절했다. 유엔 사무총장이 242호 결의안 실행을 위해서 소련 주재 스위스대사 군나르 야링 Gunnar Jarring 을 특사로 임명했다. 

12월 12일- 야링이 베이루트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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