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구정 대공세에서의 정보실패 유형은? Le monde

"핵보유국이 패전에 몰리면 반드시 핵무기를 사용할까?"


[정보 실패]
[베트남전][구정대공세]



1968년 1월 31일부터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이 전개한 구정 대공세는 베트남전의 분수령이었다. 남베트남 연합군 진영이 전술적으로 승리했지만, 전략적으로 패배하면서, 북베트남이 베트남전쟁에서 승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68년 1월 31일, 베트남의 구정 휴일에 북베트남의 공산주의 군대가 남베트남에 대한 대규모의 통합된 기습을 단행하면서 미국을 놀라게 만들었다. 물론 공산주의 군대의 군사적 승리는 일시적이었지만, 구정 대공세는 베트남 전쟁의 결정적인 전투가 되었다. 미국인들이 전쟁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미국 정책결정자들이 베트남에서 미군의 주둔 규모를 감축하도록 모색하게 만들었다.   

구정대공세 직후의 정부 조사 보고서는 미국과 남베트남 군장교들과 정보분석가들이 적 공격의 강도, 협동, 그리고 시기를 예측하는데 실패했다고 결론내렸다. 구정대공세 이전에, 다양한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 수집이 등한시 되었고, 남베트남과 미국 사이에 언어 장벽이 있었고, 적 전략에 대한 오해가 존재했고, 이것이 구정대공세에서의 정보 대실패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제임스 월츠에 따르면, 미국이 적의 움직임을 적절하게 예측해서 기습에 따른 군사적 결과를 모면할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게 놓쳤다. 

한편, 알렉산더 오보덴코는 구정대공세에서의 미국의 정보실패에 대해서 다음을 지적했다 : 적의 기습에 대한 미국 본토의 CIA와 베트남 현지의 미군 정보당국간의 견해차이가 있었고, 이것이 정보실패로 귀결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논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1968년 1월의 구정 휴일이 다가오자, 남 베트남 주둔의 CIA분석가들과 군 장교들은 적의 군사 전략을 본토의 CIA 본부 분석가들 보다 더 정확하게 결론내렸다. 사이공의 미군 사령부는 본토의 CIA 분석가들보다 공산주의자들의 새로운 군사전략에 대한 새로운 정보에 더욱 무게를 두었다. 이같은 정보에 대한 다른 대응은 왜 현지의 군지휘관과 정보분석관들이 본토의 그들의 동료들보다 적의 군사전략에 대한 더 정확한 결론을 내리게 만들었는지를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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