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스만 침공과 미국의 정보실패 Le monde

케네디, 피그스만 침공에 대해...

<피그스만 침공 실패 이후 쿠바의 포로가 된 2506 여단이라 불리던 쿠바 망명객 출신 포로들>

[정보실패]
[미국][케네디]
[앨런 덜레스]
[피그스만 침공]



피그스만 침공 Bay of Pigs Invasion 이란 1961년 4월 17일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미국이 훈련한 1400명의 쿠바 망명자들이 미국의 도움을 받아 쿠바 남부를 어설프게 공격하다 실패한 사건이다. (1961년 4월 17일-4월 19일)

침공 논의 과정에서  CIA국장 앨런 덜레스는 침공계획을 옹호하면서 다음을 주장했다고 한다 : "현재 지하 저항운동 조직의 소속 인원이 2500명 남짓이고, 2만 명 이상의 동조 세력이 있으며, 쿠바 여단이 일단 쿠바 섬에 상륙하기만 하면, 쿠바 국민의 최소 4분의 1이 적극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침공에 동조하는 쿠바인의 봉기는 없었다. 

피그스만 침공의 참담한 실패 이후, CIA 감찰감 라이먼 커크패트릭 Lyman Kirkpatrick 이 6개월 동안의 내사 끝에, 쿠바 작전에 대한 감찰감의 조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The Inspector General's Survey of the Cuban Operation" [1961년 11월] 보고서의 결론은 피그스만 침공 작전 실패의 책임은 대부분 CIA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커크패트릭의 내사 결과에 따라, 케네디는 미국 중앙정보국 국장 앨런 덜레스 Allen Dulles의 경질을 결심하고 그에게 다음과 같이 통보했다 : "의원 내각제였다면 다름 아닌 내가 물러나게 되었을 것이요. 하지만 우리네 제도로는 당신이 떠날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덜레스는 실패의 원인은 케네디가 제2차 공습을 취소한 것에 있었다.

커크패트릭의 보고서에 따르면, 공습 취소 결정이 주요 실패 요인이 아니었다. 커크패트릭은 CIA의 패인으로 서투른 기획, 조직 편성, 요원 배치, 운용 관리 등을 들었다. 작전 실패는 CIA 조직 자체의 오만,무지,무능 탓이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정보국은 자기기만에 빠져있었고, 그 결과 비밀 작전은 코미디 혹은 비극 아니면 둘다라는 것이었다. 쿠바 작전을 진행하면서도, CIA장교들 중에 스페인어 구사자가 거의 전무했고, 이 장교들은 카스트로를 대체할 쿠바인 꼭두각시들을 경멸하기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보고서는 작전 실패 요인으로 다음을 적시했다 : "침공이 귀신 조화 부리듯 충격을 유발, 봉기를 촉진할 것"이라는 그릇된 억측을 상정했다는 점, 다방면의 정보 유출로 카스트로에게 공격대비 경계태세와 실효성있는 대응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점.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도 제시되었다.

1. CIA가 그럴듯한 은폐조치 없이 게릴라 지원에서 노골적인 군사행동으로 작전을 변경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월권했다.

2. 위험을 현실적으로 평가하는데 실패했고, 정보와 결정들을 내부적으로 소통하는데 적절하지 못했고, 정부의 원칙과도 조화되지 못했다.

3. 쿠바 출신 망명 지도자들을 작전에 적절하게 참여시키는데 실패했다.

4. 쿠바의 내부의 저항을 조직화하는데 실패했다.

5. 쿠바군에 대한 정보를 능숙하게 수집,분석하는데 실패했다.

6. 정보의 내부 소통을 관리하는데 실패했다. 

7. 고급 간부를 적절하게 배치하는데 실패했다.

8. 작전 관련 중앙정보부 요원들 중에 스페인어 구사자가 부족했다.

9. 일관된 정책이 결여되었고, 만일의 사태에 대한 긴급 계획이 부재했다.

결론적으로,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 "CIA 간부들은 대통령에게 다음을 실토했어야 했었다. 진상은 이러저러 합니다. 작전은 중지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CIA는 군사 작전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승산을 현실적으로 계산하지 못하는 실책을 범했다."

2001년 3월 23일부터 25일까지 쿠바에서 열린 피그스만 침공 사건 국제회의에 따르면,당시 관련자들의 증언들과 비밀이 해제된 사건관련 문서들을 참고해 보면, 덜레스 CIA 국장이 침공을 통해 미국을 쿠바와의 분쟁 속으로 몰아가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났다고 한다. 즉, CIA는 침공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임기 초반의 풋내기 젊은 대통령이 수모를 당하기 않기 위해서 이 침공에 미군이 직접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수 없도록 상황을 만들어 가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덧글

  • 검투사 2013/11/22 22:43 # 답글

    문제는 이 전부터 이 작전 자체가 우째 케네디 대통령이 어뢰정 정장이던 시절에 싸운 자들이 작전을 짜던 식으로 만들어졌고(토나이투 님 등의 글 참조), 결국 하도 많은 자가 실패 후 말을 바꿔서(저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 기억이 안 나네요 등) 울화통이 터진 케네디 대통령이 회의실에 비밀 녹음기를 설치, 그 덕에 1962년 10월 미사일 사태 때에는 <조선왕조실록> 이상의 수준에 달하는(당시 회의 참석자들의 감정 상태를 보여주는 소리며 말투 들까지 녹음) 많은 기록을 남길 수 있었죠. -ㅅ-
  • 파리13구 2013/11/23 10:56 #

    네, 미사일 위기 당시 기록을 보면 엄청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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