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트,새우가 고래를 싸우게 만들수 있을까? Le monde

"핵보유국이 패전에 몰리면 반드시 핵무기를 사용할까?"

<사다트와 키신저>


[냉전][미소관계]
[데탕트]
[이집트][이스라엘]
[욤 키푸르 전쟁]
[닉슨][키신저][브레즈네프][사다트]



냉전이 한창인 가운데, 양대 초강대국이 데탕트를 맞이하게 되면, 세계에 평화의 따스한 바람이 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때로 세계적인 데탕트가 지역 수준에서는 분쟁 유발을 촉진하게 된 경우가 있다고 한다. 바로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직후의 국제관계가 그렇다는 것이다. 

크레그 데글의 데탕트의 한계 :미국,소련 그리고 아랍-이스라엘 분쟁 1969-1973, 2012는
1973년의 욤 키푸르 전쟁을 세계적인 미소간의 데탕트 환경이라는 맥락하에서 재조명한 것이다.

Craig Daigle , The Limits of Détente: The United States, The Soviet Union, and the Arab–Israeli Conflict, 1969–1973

이 책의 핵심 주장은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이 바로 미소간의 데탕트의 결과라는 것이다. 미소간의 긴장 완화가 역설적으로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를 전쟁을 도발할 정도로 대담하게 만들었고, 사다트는 전쟁 도발을 통해서 아랍-이스라엘 분쟁에 대한 해법 제시를 꺼리는 양대 초강대국을 개입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고, 그 결과 중동의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쟁을 도발한 사다트의 주요 동기는 지역 평화 진행과정의 정체상태에 대한 그의 좌절에서 기인했고, 미국 닉슨 행정부가 이스라엘에게 양보를 하도록 적절한 압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타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사다트의 전쟁 도박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해볼만한 도박이었다는 것이다. 

데글 연구의 주된 공헌은 1973년 욤 카푸르 전쟁 발발 이전까지의 미소간의 관계개선이 역설적으로 지역에서의 분쟁 발발을 더욱 쉽게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세계적인 차원에서 데탕트가 1970년대초의 미소간의 긴장완화,관계개선을 초래했다면, 지역 차원에서 데탕트는 아랍-이스라엘 평화협정의 진전을 방해했고, 이것이 바로 욤 키푸르 전쟁의 발발을 촉진했다."

이 책에 따르면, 중동 전쟁의 발발을 방지하는 미국 닉슨 행정부의 외교가 어떻게 실패했는지, 그리고 사다트의 권력 장악 이후, 이집트에서의 소련의 영향력이 어떻게 감소하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중동에서 미소 양국은 전쟁발발을 원치 않았지만, 전쟁은 발발했고, 이는 양대 초강대국의 전쟁 억제 외교의 실패라는 것이다. 

1973년 전쟁 이전, 사다트는 워싱턴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사다트가 1972년 7월 15000명의 소련 군사고문단 추방을 발표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였다. 키신저는 사다트의 이같은 반소 행동에 관심을 기울였고, CIA의 유진 트론 Eugene Trone 을 통해 사다트와의 막후 협상을 했다. 트론은 1971년에 사다트의 국가안보 보좌관이 된 하페즈 이즈마일 Hafez Ismail과 주로 접촉했다. 이렇게 트론-이즈마일 접촉이 미국-이집트간의 비밀 연락 통로가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비밀접촉은 큰 성과를 만들지 못했다. 이 비밀 접촉이 실패로 돌아가자, 사다트는 교착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군사행동 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두가지 중요한 분석을 제공했다. 첫째, 욤 키푸르 전쟁은 데탕트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양대 초강대국은 유엔안보리 결의를 통해서 즉각적인 휴전을 결의할 수도 있었다. 대신에 양국은 각각의 지역 동맹국에게 대규모 무기 공수를 하는 선택을 했고, 전쟁이 길어지게 만들었고, 미소관계가 충돌 직전까지 가게 만들었다.

둘째, 전쟁은 그 이전 몇년동안의 미소관계와 정책결정의 산물이고, 데탕트의 결과라는 것이다. 사다트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복지부동하던 초강대국들을 움직일수 밖에 없도록 강제했고, 이는 지역 상황의 교착상태를 타파하고, 새로운 지역 정세의 재구성을 위한 것이었다.  

가령, 1972년 5월, 닉슨과 브레즈네프가 만나자, 사다트는 양대 초강대국이 중동에서의 새로운 전쟁을 막기 위해서 현상유지에 합의했다고 확신했고, 그것은 바로 평화도 전쟁도 아닌 교착상태의 지속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다트는 이같은 정체상태를 참을 수 없었다. 사다트의 관점에서, 미소 양국을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서는 전쟁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새우가 나서서 싸울 의사가 없었던 고래들을 싸우기 직전까지 몰아간 것이 바로 1973년의 욤 키푸르 전쟁이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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