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보유국이 패전에 몰리면 반드시 핵무기를 사용할까?" Le monde

"북한문제 해법을 가진 것은 베이징이다!"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

[욤 키푸르 전쟁]
[제4차 중동 전쟁]
[이스라엘][이집트][시리아]
[핵위기][핵전쟁]
[골다 메이어]

욤 키푸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핵무기 사용을 고민했다!


상식적으로 보면, 만약 핵보유국이 타국에게 침공을 당해서 패전의 위기에 몰리면, 최후의 수단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지만,
1973년 10월의 욤 키푸르 전쟁에서의 이스라엘은 다른 선택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2003년 10월 6일자 미국 뉴욕타임스의 마지막 핵전쟁 위기의 순간 이라는 기사에 따르면,
1973년 10월의 욤 키푸르 전쟁 초기에 연패 중이던 이스라엘이 핵무기 사용을 검토했지만,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가 제동을 걸면서 핵전쟁 발발을 막았다고 한다.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시리아의 기습 공격은 이스라엘에게 충격이었다. 이스라엘은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서 침공을 받았다.

10월 7일 아침, 이집트군이 수에즈 운하를 도하했고, 시리아 전차 대열이 골란 고원 깊숙이 침투해 왔다. 방어과정에서 수백명의 이스라엘 병사들이 영웅적으로 전사했지만, 이는 이스라엘 국경에 있는 작고,고립된 요새에서의 절망적인 노력에 불과했다.

이스라엘 예비군이 배치되면서 상황이 다소 개선되었지만 시리아 전선에서만 그랬고, 수에즈 전선에서는 여전히 재앙이었다. 

10월 8일 이스라엘의 최초 반격은 비참한 실패였다. 그날 저녁, 이스라엘 국방장관 모세 다얀 Moshe Dayan 은 "이스라엘 제3왕국의 종말"을 속삭이는 것을 들었다. 이스라엘 공군사령관 베니 펠레드 Benny Peled 는 지금같은 병력 손실이 계속된다면, 1주일안에 이스라엘은 더이상 효과적인 공군력을 보유할 수 없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그 날은 바로 이스라엘 군 역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순간이었다.

이스라엘 군 고위 지도부가 이스라엘의 종말 무기 사용을 제안한 것은 바로 10월 9일 아침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대략 50대의 전투기를 잃었고, 500대의 전차를 잃었고, 이집트 전선에서만 400대를 잃었다. 총리의 수석 군사 보좌관이 핵무기 사용 제안을 들었을때, 그는 이스라엘군 부 참모총장에게 눈에 눈물을 머금으며, "당신이 반드시 이 미친놈들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날 아침 늦게, 전시 내각에서의 침울한 보고를 마치면서, 다얀 국방장관이 총리에게 핵무기 사용을 제안했다. 다얀이 정확하게 무엇을 제안했는지는 관련 기록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지만, 그는 이스라엘이 마지막 수단, 즉 핵무기를 강구해야 할 시점에 빠르게 다가다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확실히, 다얀은 미국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되기를 원했다. 그 마지막 수단이 바로 핵무기 사용이었다는 것은 전쟁 중 국방장관의 대변인이었던 라비가 확인한 바 있다.

이 제안에 대해서 골다 메이어 총리가 다른 전시 내각 장관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제지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다얀의 움울하고,비관적인 수사에 굴복하기를 거부했다. 대신에 그녀는 미국의 닉슨과 토론하기 위해서 비밀리에 워싱턴을 방문하고자 했다.

하지만 헨리 키신저가 이 방문 제안을 거절했다. 키신저는 이 예정되지 않은 방문이 히스테리 혹은 협박이 될 것이라 우려했다. 당시, 미국 정보당국은 이스라엘이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여리고 미사일을 발사 대기 상태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파악하기 쉽게 미사일을 배치했고, 이는 아마도 미국이 개입할 수 밖에 없게 만들기 위해서 였다.

키신저는 대신에 이스라엘에 대한 공수 작전을 진행했고, 3일만에 미국의 대규모 공수 작전이 시작되었다. 

그 덕분에, 전세가 역전되었다. 10월 21일, 이스라엘군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20마일밖까지 진격했고, 수에즈 운하를 돌파, 이집트 제3군을 포위했다. 몇 일안에 종전이 선포될 예정이었다.

이렇게 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케네디가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가 핵전쟁 발발을 막았다. 메이어가 다얀의 염세주의적 제안을 수용하기를 거부한 것은 핵재앙을 막았을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이스라엘이 책임있고, 믿을만한 핵보유국임을 알게 만들었다. 

전쟁에서 메이어가 보여준 신중함은 핵무기가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다른 무기들과는 달리, 어떤 조건 속에서도 절대로 사용하면 안되는 무기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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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Luthien 2013/10/30 19:35 # 답글

    르몽드가 소스를 어디서 따 왔는지 모르겠는데... 이스라엘은 핵 사용을 자제한 게 아니라 핵 가지고 미국을 협박했지요. 그래서 핵 에스컬레이션을 두려워한 미국에게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지원을 얻어냈고.
    67년 공습때도 실패를 대비해서 핵을 준비한 적이 있으니 이래저래 이스라엘은 핵에 대한 거부감이 (당시로서는) 굉장히 희박한 나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파리13구 2013/10/30 22:49 #

    르몽드가 아니라 뉴욕타임스 입니다 ^^
  • 홍차도둑 2013/10/30 20:30 # 답글

    어째 꺼꾸로의 소스를... 뭐 덕분에 이건 늘 배우고 갑니다. 꺼꾸로 입장에서의 정당한 변명이란 이렇게 언플하는ㄱ거다.
  • 네비아찌 2013/10/30 20:50 # 답글

    저때 심지어 키신저는 브레즈네프에게 이스라엘이 만약 핵을 써도 미국과는 절대 무관하고, 이스라엘이 핵을 쓰면 소련도 이집트에 핵탄두를 빌려줘서 이집트가 핵보복을 하게 하고 미국과 소련은 이들 싸움에서 빠지자는 비밀제안을 했죠.
  • 파리13구 2013/10/30 22:49 #

    혹시 출처를 알수 있을까요?
  • 라라 2013/10/30 22:51 #

    실제 소련 수송함이 핵미사일을 싣고 이집트로 가다 종전으로 돌아갔는데.

    역사 왜곡을 저렇게도 하는구나...
  • 솔까역사 2013/10/31 05:01 # 답글

    핵무기가 파괴를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협상의 지렛대로 사용되었군요. 이렇게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성공적으로 이용하면서 다른 나라들에게 매우 나쁜 교훈을 주게된 것이 아닐까요?
  • 파리13구 2013/10/31 10:23 #

    글쎄요...
  • 2013/11/03 02:1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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