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히틀러,한니발에 대한 로마의 유화정책?" Le monde

티투스 리비우스의 한마디...


[로마사]
[제2차 포에니전쟁]
[한니발 전쟁]
[유화정책][체임벌린][히틀러]



로버트 카플란의 승자학을 읽다보니, 제2차 포에니 전쟁 직전 로마의 대 한니발 정책을 제2차세계대전의 체임벌린의 유화정책과 비교한 대목이 있어서 이를 소개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즉 당시 로마는 고대의 히틀러인 한니발에 대해 유화를 하다가 제2차 포에니 전쟁이라는 엄청난 참화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니발은 가짜 영웅적 지도자였다. 그는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절망적인 기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다.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한니발은 이전 전쟁의 결과로 부과된 부당한 평화협정에 격분했다. 

한니발은 제1차 포에니 전쟁으로 말미암아 사기가 떨어진 적을 공격하는 이점을 활용했다. 미국 의회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히틀러가 베르사유 조약을 무시하고 라인란트로 진주하고, 더 나아가 폴란드를 공격했을 때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로마의 원로원은 제1차 포에니 전쟁의 종전조약을 위반하고 스페인 등 로마 영토를 장악한 한니발의 위협에 직면해서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서 큰 혼란을 겪었다.

예일대학의 도널드 케이건은 제2차 포에니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을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 "로마인은 처음에는 현실을 외면했고, 그 다음에는 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행동을 취했다 "

유화정책은 원로원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루스벨트적인 귀족들은 카르타고가 야기하는 위협에 대해 경고했지만, 폐쇄적인 지방 주민들이 이를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 

한니발이 스페인 동부지역을 떠나 알프스를 넘어 국경을 침범한 뒤 로마를 압박했을때, 인기에 영합하던 폐쇄적인 호민관 헤레니우스는 원로원에서 전쟁을 원하는 사람들은 오직 귀족 뿐이라고 연설했다. 하지만 그때쯤 원로원은 이제 로마가 행동을 취할 때이고, 남은 길은 오직 전면전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로버트 카플란, 승자학, 62-63쪽   




덧글

  • 지나가던과객 2013/10/28 16:21 # 삭제 답글

    체임벌린과 비교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나요?

    1차 대전때 수십만이 죽어쓴데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있는 상태면 그런 전쟁이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 사력을 다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파리13구 2013/10/28 16:27 #

    로버트 카플란의 관점에서 보면,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의 양국간의 합의를 깨고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로마에 대한 위협을 제기한 것을, 당시 로마가 적절하게 대응하는데 실패한 것은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히틀러의 거듭된 위반에 대해서 영국이

    적절하게 대응하는데 실패한 체임벌린 유화정책의 교훈과 역사적으로 비교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비교는 비교일 뿐입니다.
  • 긁적 2013/10/28 16:37 # 답글

    그닥..... 1차 포에니전쟁 종전 당시 스페인에 대해 별 이야기가 없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로마가 개입할 명분이 부족하죠. 굳이 유사점을 찾자면 한니발이 무력으로 영토를 확장한 것 정도인데, 고대의 상황을 현대에 대입하기는 좀..;;
    아주 좋게 해석해도 위 주장은 근거가 보충될 필요가 있습니다.
  • 파리13구 2013/10/28 16:40 #

    알겠습니다. ^^

    로버트 카플란과 도널드 케이건의 관점을 단순히 참고만하시기 바랍니다.
  • gg 2013/10/28 17:45 # 삭제 답글

    1차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가 카르타고의 영역인 사르데냐와 코르시카를 빼앗은건 협정위반이 아니고, 카르타고가 로마의 동맹인 사군툼을 침공한건 협정위반이라고 하면 좀 말이 안될거 같구요. 게다가 스페인은 로마영역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말해도 포에니전쟁 당시 로마는 유화주의적이지도, 신의를 지키는 타입도 아닌 팽창정책에 여념이 없는 청년국가여서..차라리 체임벌린하고 비교할 거면 카르타고의 한노를 비교하는게 적합할거 같네요.
  • 파리13구 2013/10/28 17:50 #

    감사합니다.
  • gg 2013/10/28 17:49 # 삭제 답글

    염전사상이나 유화주의는 시칠리아에서 대다수의 자국민 병력을 그리스와의 교전시 상실한 후 용병외의 자국민 동원에 부정적이었던 카르타고의 귀족층을 기준으로 설명하는게 적합하고, 한니발이나 그 아버지 하밀카르 바르카는 처칠에 비교하는게 더 적합할거 같습니다. 로마야말로 카르타고와 대비해보면 히틀러에 가깝죠. 기존의 지중해 헤게모니를 쟁탈하려는 신흥강국, 그리고 굳이 거기에 대항하지 말고 평화를 지키려했던 카르타고 내 유화파.. 로버트 카플란이 이런 구도를 억지스럽게 비꼰건지, 지식이 부족한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 파리13구 2013/10/28 17:53 #

    단순히 로버트 카플란의 주장이었다면 무시해도 좋을 듯 하지만

    도널드 케이건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고 하기에 소개한 것입니다.

    카플란은 지식이 부족하다고 할수 있지만, 케이건은 그 분야 대가인지라...ㅠㅠ

    양해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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