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3세가 덴마크전쟁에 개입하지 않은 이유? Le monde

비스마르크, "혁명적 시대의 보수주의자!"


덴마크 전쟁은 1864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대상으로 덴마크와 프로이센,오스트리아가 전쟁을 벌인 것이다.  

프랑스의 관점에서 보면, 덴마크 전쟁은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힘을 모아 덴마크를 공격, 결국 두 공국을 넘겨받은 것으로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1815년 빈 조약의 관련 규정,즉 슐레스비히는 독일연방이 아니지만 홀슈타인은 연방 구성원이라는 규정에 대한 위반이었다.  빈 조약에 따라 영국,프랑스는 이 전쟁에 외교적으로 개입, 전쟁 이전 상태로의 복원을 주장할 수 있었다.


분쟁의 외교적 해결을 위해서 영국이 프랑스에 공동 개입을 제안하자 나폴레옹3세는 보상을 요구했다. 소 라인 little rhine 을 요구했다., 대라인 great rhine 이 라인란트 전체를 의미했다면, 소라인은 자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영국은 이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다.  


긴장이 고조되자, 나폴레옹의 모순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그는 독일 통일을 두려워했지만 독일 민족주의에 동정적이었고 이 풀수없는 딜레마를 해결하기를 주저했다. 그는 프로이센을 가장 순수한 독일의 민족 국가라 간주했고, 1860년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 “프로이센은 독일민족,종교개혁,자유주의적 헌법의 화신이다. 이 나라는 가장 큰 진정한 독일 군주국이고, 다른 대부분의 독일 국가들 보다 더 높은 양심의 자유, 계몽주의,더 많은 정치적 권리가 주어졌다.”


프로이센의 독특한 지위에 대한 나폴레옹의 인정은 프로이센의 최종 승리를 위한 열쇠였다. 결국 프로이센에 대한 나폴레옹의 공공연한 존경이 프랑스가 덴마크 전쟁에 개입하지 않은 알리바이 중 하나가 되었다.


-이상의 나폴레옹3세의 모순적 외교는 리슐리외 추기경의 국가이성과는 다른 것이었다.


최초로 국익이 최우선임을 실천한 것은 바로 30년전쟁 시절의 프랑스 재상이었던 리슐리외 추기경 Cardinal Richelieu 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톨릭 추기경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성로마제국 세력의 증가를 막기위해, 개신교편에 가담했다. 리슐리외의 국가이성에 따르면, 국가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익이 법,도덕,종교 보다 더 우위에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17세기 유럽에서,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신교를 억압하고, 구교를 바탕으로 독일을 중심으로 전유럽을 통일하려 했다. 이에 대해 구교의 추기경이었던 리슐리외는 자신의 종교적 믿음이 아니라, 국익의 관점에서 이에 반대했다. 만약 신성로마제국 주도로 독일이 통일되면, 통일 독일이 프랑스를 압박할 것이고, 따라서 프랑스의 안보가 위협을 받을 것이라 그는 계산했다.이렇게 리슐리외는 프랑스 국익의 관점에서 독일 통일 저지를 위해 노력했고, 그의 이같은 노력 덕분에, 프랑스는 나폴레옹 전쟁 패배전까지 유럽 제1의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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