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3세의 독일 정책의 전략적 오판은? Le monde

비스마르크, "혁명적 시대의 보수주의자!"

[19세기 외교사]
[프랑스]
[제2제정]
[나폴레옹3세]

다음은 헨리 키신저의 지적이다.

메테르니히 체제가 붕괴하는 혼란속에서, 프랑스는 2개의 전략적 대안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는 리슐리외의 정책을 지속추진하면서, 중부 유럽을 분열된 상태로 남겨둘 수도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나폴레옹이 민족-자결주의 지지라는 자신의 혁명적 확신을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최소한 독일내에서만은 그랬다. 나폴레옹3세는 독일연방내부의 기존 통치자들을 지지해야만 했고, 그들은 중부 유럽에서의 분열을 유지하기를 갈망했다. 

아니면, 나폴레옹은 자신의 숙부가 그랬던 것처럼, 공화주의적 십자군 지도자로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서 프랑스가 민족주의자들의 지지를 확보, 유럽에서의 정치적 지도력을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할수 있었다.

프랑스에게는 불운하게도, 나폴레옹은 두 전략을 동시에 추진했다. 민족 자결주의의 지지자인 그는 이것이 중부 유럽에서의 프랑스 지위에 야기할 수도 있는 지정학적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폴란드 봉기를 지원했지만, 그 결과에 직면하게 되었을때 머뭇거렸다. 그는 프랑스에 대한 모욕이라는 관점에서 빈 체제에 반대했지만, 빈체제가 한편으로 프랑스 안보를 위한 최선의 것이라는 것을 그가 깨달았을때는 이미 늦었다. 

빈회의 결과로 탄생한 독일연방은 심각한 외부적 위험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만을 가진 단위로 행동하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그 소속 국가들이 공격적 목적으로 힘을 모으는 행위는 확실히 금지되었고, 공격적 전략에 합의할 수도 없었다. 독일연방이 존재한 반세기동안 이 주제는 결코 제기된 적 조차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빈체제가 건재하는 한 프랑스의 라인강 국경은 안전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정책이 가능하게 만들었던 독일연방 붕괴 이후 1세기 동안 프랑스의 라인강 국경은 안전한 것이 되지 못할 운명이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안보의 핵심적 요소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1866년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이 발발, 이 전쟁으로 독일연방이 종말을 고하게 되자, 나폴레옹3세는 오스트리아 황제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했다.

"나는 주로 프랑스에 대항해서 조직된 독일 연방이 해체된 것을 보고 대체로 만족한다고 고백해야만 할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합스부르크는 보다 분별있게 대답했다. "독일연방은 순수한 방어적 동기에서 구성되었고, 반세기 존재할 동안에 이웃국에 대해서 위협 원인이 된 적이 결코 없었다" 

결국, 독일연방에 대한 대안은  리슐리외적인 분열된 독일이 아니라, 통일 독일이었다. 통일 독일은 프랑스를 인구수로 압도했고, 그 산업 능력은 곧 프랑스를 초월하게 될 것이었다. 빈체제를 파괴하면서 나폴레옹3세는 방어적인 독일연방을 없앴고, 이를 통일된 독일이라는 프랑스 안보에 대한 잠정적인 공격적 위협으로 대체시켰다.


-출처

키신저,외교, 108-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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