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 전투 이후 비스마르크를 자제하게 만든 것은?" Le monde

"비스마르크는 독일을 통일하지 않았다?"


[독일]
[독일 통일]
[비스마르크]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1866년]
[사도바 전투]

비스마르크가 사도바 전투 이후 회군을 결심한 이유는?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 중 1866년 7월 3일의 사도바 전투에서 프로이센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전통적인 설명에 따르면,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이 1866년에 오스트리아에게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에게 영토의 축소도 배상금의 지불도 요구하지 않은 것은 비스마르크가 다가오는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오스트리아의 우호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도바 전투 이후, 프로이센의 국왕 빌헬름과 군부는 승리에 도취되어 빈으로 진격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의 판단은 달랐다. 오스트리아를 불구로 만들어 그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장치 프로이센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고 계산했다. 그리고 빈으로 진격한다면 반드시 나폴레옹3세가 개입할 것이고, 이 경우 프로이센에 우호적인 국가들도 도리어 반감을 가지게 될 것이라 판단했다. 기록에 따르면, 단기적인 승리에 도취해서 오스트리아에 대한 값싼 전리품을 주장하는 군부에 대해서, 독일제국의 통일의 날을 위한 장래를 멀리 내다볼 수 있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병사들의 욕망을 억제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에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심지어 거실에 들어가 울었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왕과 군부가 결국 비스마르크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비스마르크의 위대한 결정이라 평가받는다.

하지만 역사가 씨먼에 따르면, 비스마르크의 회군 결정에 결정적이었던 것은 오스트리아라는 장기적인 전략적 고려에서 였기 보다는 프랑스의 즉각적인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 때문이었다고 한다.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프랑스의 나폴레옹3세가 어떻게 나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의 황후 유제니가 나폴레옹3세가 1859년 이탈리아 전쟁에 개입했을때 프로이센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 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하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 동원령 선포! 이탈리아 전쟁시, 오스트리아에 대한 프랑스-사르데냐 연합군의 결정적인 승리 직후, 프로이센이 군사 개입하겠다고 위협하면서, 프랑스는 결국 오스트리아와 타협하지 않을수 없었었다. 이번에는 프랑스 차례라는 것이었다. 사도바 이후, 비스마르크는 나폴레옹3세의 의도를 확신할수 없었고, 결국 사도바에서 멈추기로 결심했다. 이는 오스트리아에 대한 배려라기 보다는 프랑스의 무력 개입이 초래할 수도 있는 군사적,외교적 위험에 대한 대응 차원이었던 것이다.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 이전에, 비스마르크와 나폴레옹3세는 비아리츠 회담에서, 프로이센은 프랑스가 룩셈부르크와 벨기에를 대상으로 영토 확장을 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보상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약속했다.

프로이센의 승리가 확정되자, 나폴레옹3세는 독일주재 프랑스대사 베네데티에게 훈령, 전쟁에서의 프랑스 중립에 대한 보답으로, 프랑스가 장차 벨기에를 획득하는데 프로이센의 지원을 받게 만드는 것을 확정지으라고 명령했다. 8월에, 비스마르크와 베네데티는 회담을 통해서 이른바 베네데티 초안을 만들었다 (1866년 8월) 이 초안에 따르면, 프로이센은 프랑스에게 프랑스의 벨기에 점령을 돕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는 여러가지 핑계를 대면서 초안을 공식화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었고, 결국이 초안은 공식 조약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비스마르크는 베네데테가 수기로 작성한 초안을 간직했고, 1870년 보불전쟁 직전에 영국의 더 타임스지에 흘렸다. 이 초안 공개로 영국 여론이 프로이센에 동정적으로 되었다.

비스마르크는 1871년 5월 2일, 제국의회에서의 연설을 통해서 당시의 일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 심지어 1866년 8월 6일, 나는 프랑스 대사가 훈령을 받고 내게로 와서, 간결하게 최후통첩을 전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 마인츠를 양도하지 않으면, 즉각적인 선전포고를 각오하라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프랑스측의 답변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 "좋아요. 그럼 전쟁입니다!" 대사는 이 대답을 가지고 파리로 갔다. 몇일 뒤, 파리의 그 분은 달리 생각하기 시작했고, 나는 나폴레옹 황제가 이 대답을 불쾌하게 찢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프랑스 대중은 프로이센의 승리에 대해 분노했고, 사도바에 대한 반대급부를 요구했다. 이것이 바로 1870년 보불전쟁 Franco-Prussian War 의 원인들 중 하나가 되었다.   


참고-

Seaman,  From Vienna to Versailles. Contributors: L. C.B. Seaman - Author. Publisher: Routledge. Place of publication: London. Publication year: 1988

김용구, 세계외교사,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1



덧글

  • 일화 2013/10/17 16:42 # 답글

    이 주장이 맞다면 비스마르크는 당연히 그러한 위협을 국왕과 군부에 전달하였을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나요?
  • 파리13구 2013/10/17 16:44 #

    제가 본 자료에는 설득 논리는 없었습니다.

    다만, 추정해 보는 것은 가능합니다.

    외교에서의 거래가 일단 비밀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프랑스와의 비밀 합의, 그리고 첩보에 따르면 프랑스가 전쟁을 준비 중이다는 식으로

    프랑스 공포를 동원했다면,

    왕과 군부를 설득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봅니다.
  • 일화 2013/10/17 16:48 #

    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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